인왕산, 인왕산 노래를 불렀으나 정작 주변만 맴돌고 글로만 접했던 것이 낯부끄러웠다. 그러던 7월, 모처럼 혼자만의 시간이 나서 주저없이 향한 곳은 서촌이었다. 장동팔경을 답사하리라 마음 먹고, 나름 코스를 이래저래 구상해봤지만, 동선보다 앞서는 마음의 행로는 역시 가장 염원했었던 수성동이었다. 수성동 계곡의 기린교가 너무나도 궁금했다. 미스터선샤인 애기씨가 건너며 훈련한 곳이기도 하지만, 겸재 장동팔경첩 중 수성동 그림에 나온 다리가 그대로 남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경이감이 있었다.
사직터널을 지나 필운대로 맞이해 주는 인왕산이 새삼 다르게 느껴진 7월의 여름날, 경복궁역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하며 설렜던 마음이 생생하다. 네이버지도로 확인한 수성동계곡까지의 거리는 1.4km, 약 25분길이었다.
| 출처: 네이버지도 |
불과 20여분만 걸으면 화첩 속의 그곳에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참 좋다. 또한 불과 1.4km의 길이지만, 다섯 개의 법정동, 즉, 내자동, 체부동, 통인동, 누하동, 옥인동을 거친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행정동으로는 사직동과 청운효자동, 이렇게 두 개의 동에 속한다). 네이버지도의 기능을 몰라서인지, 법정동 표시는 카카오맵이 잘 되어 있어서 가져왔다.
| 통인동 자하문로7길(1110a). 서촌 어디서든 인왕산의 시선을 느낀다. |
그러다 자하문로 9길을 잠깐 거쳐 필운대로에 이른다. 북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이내 다시 서쪽으로 난 옥인길에 들어선다. 한걸음 한걸음이 점층이다.
| 옥인동 옥인길(1115a). 인왕산이 한층 다가온다. |
그렇게 5분 되지 않는 길을 걸으면 마침내 옥인제일교회를 우측에 두고 수성동 계곡이 보일 듯 하며, 338m의 인왕산은 전병관과도 같은 기개를 드러낸다.
| 마침내 수성동 계곡 초입(1118a) |
수성(水聲), 즉, 물의 소리가 동의 이름이 된 곳이다. 물 흐르는 소리만 고요하게 들리는 그 시절 그 곳을 상상해본다. 인왕산자락에 누워 푸른 산과 파란 하늘을 보며 물소리를 듣고 있자니 속세의 근심을 흘려버리는 느낌이었을 테다.
이 계곡에서 안평대군을 빼면 안된다. 세종의 18명의 아들, 4명의 딸 중, 그나마 익숙한 이는 문종, 수양대군(세조), 안평대군 정도이지만, 이 셋 중 취향이나 이상향을 미루어 보면 난 늘 안평대군의 삶을 염원하고 있었다. 그의 꿈으로부터 그려진 안견의 몽유도원도 또한 이곳 서촌에서 느껴진다. 꿈에서 본 무릉도원, 즉 몽유도원도의 모티브가 된 그곳을 인왕산에서 발견하고, 그 한 가운데 지은 별서인 무계정사(무릉도원이 있는 계곡의 정사)도 현재 부암동 부근에 위치했다. 수성동 계곡에는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안평대군이 거처하며 시문, 서예, 그림을 즐기던 문화적 공간인 비해당이 있었다. 안평(安平)이라는 군호 자체로 인해 행여 게을러질까 염려한 아버지 세종은 비해(匪懈), 즉,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뜻의 호를 내려주었다. 지금 비해당은 찾아볼 수 없으나, 수성동 계곡 어딘가 있었다고 하니, 안평은 이곳에서 얼마나 기쁜 시간을 보냈을까 웃음이 나면서도, 결국 수양대군의 사약을 받아야만 했던 그 운명 또한 스쳐가 왠지 울적함도 든다.
| 출처: 오마이뉴스 |
읽은 서적들에서도 인왕산 한 가운데 아파트가 들어서야 했던 근현대사를 안타깝게 다루었고, 나 역시 많은 공감이 되었다. 그러던 중, 조금은 새로운 시각의 옥곡재 작가님의 브런치 글도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실로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주민의 이야기, 귀하다.
| 이날 촬영한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든다. |
|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1호인 기린교. 이런 소중한 안내판의 맞춤법이 아쉽다. |
| 발 담그고 시간 보내기 좋은 수성동 계곡 |
그렇게 기린교 감상을 마치고, 크지 않은 수성동 계곡 일대를 둘러봤다. 아이들을 동반한 몇몇 가족이 물에 발을 담그고 놀고 있었다. 문자 그대로 장마가 끝난 바로 다음 날임에도 불구, 수량이 많지 않아서, 평소에 오면 물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