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귀임한지 2년 반이 넘었다. 미국 나가기 전에는 사대문 안의 서울, 즉 한양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저 놀러가면 여느 서울과는 다른 맛이 있는 곳 정도로 인식한 것이 고작. 귀임 후 사대문의 정중앙에 위치한 오피스 덕에 한양, 경성의 흔적을 새롭게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예기치 못하게 관련 정보를 습득하기 시작했으며, 출퇴근길에 책을 잡는 습관도 들어버렸다.
2024년 가을 귀임 후 처음에는 한국사회만이 가지는 특성이나 한국인이 상대적으로 덜 행복한 이유에 관련된 책을 주로 찾아 읽다가(이 또한 글로 남기고자 했으나 보류), 곧 관심은 서울이라는 오래된, 한편으로 그리 오래되지 않은 도시로 옮겨갔다. 이때 읽은 서울에 관련된 책만 늘어놓아도 다음과 같다:
서울선언, 양천동네이야기, 갈등도시, 대서울의길(절반정도), 한국도시의미래(관심챕터만), 손정목이 쓴 한국 근대화 100년, 이야기가있는서울길, 서울은기억이다, 장소로 보다 근현대사, 아빠와딸DMZ를걷다, 서울시대, 골목길역사산책(서울편), 서울감성여행2-경제성장기, 오래된서울, 세한도의수수께끼, 옛그림으로본서울, 서울감성여행1-일제감정기, 서울감성여행3-개항이후, 서촌을걷는다, 서울감성여행2(2회차), 익선동이야기, 정동이야기, 서촌이야기, 한양도성(서울을흐르다), 간첩시대, 서울택리지, 오래된서울(2회차)
지금봐도 낯설다. 살아오면서 한 주제로 이렇게 다양한 책을 읽은 적이 있던가.
지금과 가까운 서울, 즉 현재와 근현대의 서울로 시작했다. 근현대의 서울은 삼프로로 익숙한 김시덕 박사의 책들로 시작했다가, 이 분야의 기라성인 손정목 교수의 책까지 읽게 되었다. 그러다 조금씩 거슬러 올라갔고, 여러 좋은 책들을 접하다 결국 여러 작가들에 의해 인용된 최종현 교수(김창희 공저)의 [오래된 서울]과 조우하게 된다. 이제 나의 바이블이다.
앞서 서울이 오래된, 한편으로는 오래되지 않은 도시라고 했다. [오래된 서울]에서 정확하게 짚어준다. 골자는 600년 서울이냐, 2000년 서울이냐 이며 나는 여기에 1000년 서울도 추가한다(물론 오래된 서울의 내용에서 알게된 사실을 바탕으로). 600년 서울은 이성계의 한양 천도인 1394년을 기준으로 한다. 1000년 서울은 서울이 중세시대에 고려 남경으로서 무대에 등장한 1067년을 기준으로 해본다. 2000년 서울은 주몽의 아들 중 하나인 온조가 위례에 터를 잡고 세운 백제의 시작점을 기준으로 한다. 풍납토성이 위치한 하남위례 부근은 분명 서울 근방이지만 사대문이 위치한 한양과는 다소 거리가 있긴 하다. 이런 기준에 따라 서울의 연식이 달라지지만, 아무래도 조선에 이르러서의 흔적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남긴 서울이라는 도시의 인상이 아닐까 한다.
서울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뭘까. 서울은 순우리말로, 신라시대의 수도 명칭인 서라벌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고려, 조선 때도 '수도'라는 뜻으로 '서울'을 썼다고는 한다. 조선시대 공식 명칭은 한양 또는 한성(수도로서 공식 명칭)이었고, 서울은 일반명사로 쓰였다고 한다. 일제시대에는 경성이었고, 해방 후 미군정 때 서울이 비로소 서울이 된다. 일반명사의 고유명사 전환이다. 미국의 수도 명칭을 Capital로 짓는 겪이다.
아무튼, 읽은 책들 중 유독 서촌에 대한 내용이 자주 겹쳤고, 한편으로 그림을 좋아하는 나는 겸재 덕에 곧내 인왕산의 매력에 빠져버린다. 인왕산기슭에 자리잡은 서촌은, 조선시대 들어서 왕의 친족, 사대부, 그리고 중인들의 지성과 낭만을 충족시켜주는 곳으로 자리잡았고, 조선 말 흥선대원군을 거쳐, 일제시대 이완용과 윤덕영의 친일의 흔적도 새겨져있는 곳이다.
서촌과 인왕산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답사해봐야 겠다는 생각에 먼저 아이들과 통인시장을 다녀왔지만, 아무래도 가족들과 함께 하기에 서촌의 가파름은 제한 연령을 조금 더 높이는 듯하다. 그러다 오늘, 모처럼 혼자의 시간이 주어져 설레는 마음으로 서촌으로 향했다. 인왕 초보자로서 먼저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에 나온 여덟 장소(중 청와대 밖에 위치한 곳 중심으로)를 둘러보리라 다짐하고, 또 설레는 마음으로 수성동 계곡을 향해 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둘러본 몇 군데를 시작으로, 프로젝트 장동팔경을 하나씩 기록해보고자 한다.
덧.
장동팔경첩도 좋지만 그래도 인왕산의 증명사진은 인왕제색도다.
위에서부터 정선의 인왕제색도(1751년; 국보 216호), 강희언의 인왕산도(18세기), 그리고 내가 촬영한 2026년 7월의 인왕산이다. 최열 작가의 [옛 그림으로 본 서울]에서 처음 접한 인왕산도는 정선으로부터 그림을 배웠다는 강희언의 작품인데 꽤나 멋스러웠다. 고등학교 친구 중에 저렇게 산을 스케치 했던 친구 녀석이 오랜만에 떠올랐다(내가 종종 그리는 산맥도 그 친구 화풍이다). 하지만 역시 인왕산은 인왕제색도가 진경을 보여준다. 서촌에서 인왕산을 바라보면 아래 사진처럼 바위산의 위엄과 풍채가 당당하며, 바위의 빗금은 마치 물이 흘러내리는 듯하다. 정선은 붓과 먹으로 그 느낌을 실감나게 담아내었다. 한편 난 풍경 사진을 찍을 때 푸른 하늘을 좋아하지만 이번만큼은 구름낀 하늘이 좋았다. 제색(霽色), 즉 비온 뒤 개기 시작하는 인왕제색도의 하늘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침 2026년의 장마가 그친 다음 날의 하늘이니 말그대로 제색천이다. 이 하늘만이 절친 이병연이 세상을 뜨기 4일 전, 그의 쾌유를 바라며 거칠게 붓을 든 겸재의 마음을 비출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