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요일

[English] 할로윈으로 가장 유명한 도시를 AI에 묻는다면

할로윈으로 가장 유명한 도시를 AI에 물으면 미국에서는 Salem이 가장 먼저 나온다. 1692년 보스턴 근교 Salem에서 진행된 witch trials, 즉, 마녀재판 때문이다. 단 몇 달 만에 약 200여 명이 마녀로 고발당하고, 20명(여성 14명, 남성 6명)이 사형(19명 교수형, 1명 압사)당하는 등 사회 전체가 광기에 사로잡혔던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한다. 사건의 발단은 1692년 초, Salem의 어린이 몇 명이 경련을 일으키고 헛소리를 하며 이상 행동을 보였고, 당시 의사는 신체적인 원인을 찾지 못하자 "마귀에 씌였다(witchcraft)"고 진단했다고 한다. 극단적인 청교도와 그 시대의 여러 여건으로 인해 마녀사냥이 진행된 곳이 바로 이 Salem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탄생한 소설, 『주홍글씨』의 작가 너새니얼 호손 (Nathaniel Hawthorne)의 고향이기도 하다.

하여, 오늘날 10월이 되면 Salem은 할로윈 무드로 아주 festive 하다. 할로윈의 유래와 관련은 없지만, 마녀나 오컬트 등의 키워드가 겹치며 미국 내 할로윈의 도시로 자리잡은 것이다.

우리 가족의 주말 공원이기도 했다. 할로윈 시즌뿐 아니라 연중 자주 찾았던 Salem, 아이들은 마녀마을로 알고 있다. 

Witch City Mall에 주차를 하고, 건물을 통과하면 각종 박물관과 샵이 많은 중심가가 나온다. 할로윈 마을도 겨울엔 크리스마스 분위기.

가운데 큰 건물 Witch City Mall 북측에 주차를 하고 건물을 통과해서 남쪽으로 나오면 중심가 Essex St.이 나온다. 거기서 동쪽 바로 옆에 Salem Armory가 있고, 빨간 동그라미가 우리 가족의 야외식탁 역할을 톡톡히 한 바위다.

늘 먹을 걸 싸가서 평평한 바위에 자리잡고 소풍을 즐겼다. 

이 바위다. 팬데믹 때도 어김없이. 9월.

갓 태어난 둘째와 장인어른, 장모님도 모시고 갔다. 6월.



10월엔 이런 분위기

할로윈에는 사람이 너무 몰려 엄두를 못냈고, 우리는 그 분위기를 느끼고 싶으면 보통 9월 말, 10월 초에 찾았다. 할로윈에 가장 근접한 때가 10월 15일이었는데, 친한 가족과 함께 찾았고, 그때도 들어가는 길이 어마무시하게 막혔다. 주차도 한참 돌다 던킨에 겨우 했다. 

 

겨울에 가도 웃어주는 호박

급작스런 귀임 발령이 나고, 보스턴 떠나기 일주일 전 마지막으로 찾은 Salem

Salem은 주요한 항구도시이기도 하다. 2021년 1월, 가족들이 한국에 들어가 있는 몇 달 동안 혼자 일출 간판깨기 다녔고, 그중 Salem도 있었다.

우리 가족에게 행복한 추억을 많이 안겨준 고마운 도시다.

2026년 10월 15일 목요일

[English] 가을 단풍, Fall Foliage

바야흐로 New England의 단풍 시즌이다. 보스턴의 각종 매체들이 이를 다루고 있다. 바로 어제자 뉴스다.

출처: NBC Boston

Boston 포함한 New England 지역이 단풍으로 유명하다. 특히 New Hampshire 주가 심볼이다. 서부 등 타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을 연출하기 때문에 미국 전역에서 단풍을 보기 위해 모여든다. 단풍을 표현하는 단어는 뭘까? 나는 현지에서 처음 들었던 단어, fall foliage다. 위의 뉴스에서도 이 표현이 보인다. Foliage는 "the collective leaves of a plant, tree, or group of plants, often including the branches and stems they grow on"이라고 한다. 여기서 핵심은 collective인 것 같다. 나뭇잎 한장이 아니라 총칭이다.

출처: NBC Boston

위의 분포를 보면 아직 보스턴까지 적극적으로 내려오진 않았으나, 뉴햄프셔 쪽은 이미 절정이다. 

나도 주재원 2년차 때, 첫째가 태어나기 전, 단풍이 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하루 급 휴가를 내고 와이프와 뉴햄프셔 내에서도 단풍의 대표주자인 White Mountains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게 벌써 9년 전이라니. 회사 동료이자 보스턴에만 60년 거주한 Steve가 드라이브 루트를 하나 추천해줬다. 이름하여 Kancamagus.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인 Pennacook의 추장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하며, 두려움을 모르는 자(The Fearless One)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렇게 인디언 추장의 길을 따라 단풍을 즐겼다.

첫째가 태어난 1년 뒤, 한번 더 찾았다. 


음, 거북목이.

2026년 9월 23일 수요일

[Career] 대기업 임원에서 국내 바이오텍으로

이직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이직 전후로 이직 이유에 대한 질문을 지속적으로 받았고, 이에 대해 글로도 남기고자 한다. 

일단 대기업의 임원으로 재직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주변의 많은 분들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다. 특히 삼전, 닉스 제외하고 작년, 올해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기업의, 또 최근 1년 사이 재계 5위로 두 계단이나 상승한 회사에 친한 지인이 있다는 점이 그랬었다고 하여, 고맙기도 또 신기하기도 했다. 이는 퇴사를 밝혔을 때 그분들이 표했던 아쉬움으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결정하는 것이지만, 주변의 이런 고마운 분들께 이직 이유를 잘 설명드리는 것도 사명이다.


이유 1. 워라벨

당연한 얘기지만 한국 대기업에서는 개인 생활을 많이 희생해야 한다. 국내도 제도적으로 많이 나아지고 있으나, 사회 정서적으로 조금 더 진화가 필요하다. 나의 경우는 특수한 조직(오너 조직)에 있었기 때문에, 이점이 더욱 부각되었다. 24/7 스탠바이를 당연시 하는 기조가 인생을 긴장의 연속으로 만들었다. 주말이든 명절이든. 또한, 나는 야근을 하지 않을 명분으로 보통 아침 6시 조금 지나 회사에 도착 후 13여 시간을 머문 뒤 온갖 방법으로 회사를 빠져나왔으나 그럼에도 야근하는 동료들을 뒤로하고 눈치 보며 탈출했다. 미국병인지, 주재원 귀임 후 가족과 안전 중심으로 세계관이 형성되었던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그리웠다. 아침에 어린이집에 태워 주고, 오후에 데리러 가서 근처 놀이터에서 놀던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아이들 참관 수업은 물론이고 입학, 졸업식도 참여 못하는 상황은 뭔가 잘못됐다 싶었다. 친한 친구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같이 밤을 새워줄 수 없다는 상황은 뭔가 잘못됐다 싶었다. 


이유 2. 커리어 (한 회사가 아니라 업계에 취직하기 위해)

워라벨 못지 않게 중요한 이유는 커리어였다. 전 직장에서 물론 소중한 커리어를 쌓았다. 사내 펀드를 조성하고 CVC (corporate venture capital)를 운영하며, 미국 현지에서 약 10건의 투자를, 현지의 메이저 VC들과 함께 이끌었다. 상당한 내부 지원에 힘입어, 투자 규모도 건 당 몇 백억 수준이었다. 이를 통해 리드투자 경험은 물론, 메이저 바이오텍의 이사회에 참여하여 현지 회사 경영 또한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다만 방산, 조선으로 변곡점을 이룬 회사의 전략적 기조에 따라 바이오 활동이 주무대가 될 순 없었으며, 5년 중 마지막 1년의 오너 조직에서는 업무 비중이 점차 계열사 운영관리로 치우쳐 갔다. 보스턴에선 모든 바이오 첨단의 끝을 전부 파악하고 있다는 기분이었는데, 한국에서는 외부 활동을 권장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업계의 감을, 그리고 자신감을 점차 잃어갔다. 이대로 퇴직하면 바이오 업계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루라도 빨리 역량을 되찾아 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한 회사가 아닌 바이오 업계 전체에 취직해야 한다. 50대 이후의 삶은 이 업계 내에서 계속 커리어를 이어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영역으로 옮겨야 했다. 전전직장에서은 산업바이오, 전 직장에서는 제약바이오 투자와 더불어 농업바이오, 그리고 대체육과 같은 식품바이오라는 넓은 분야를 커버하고 있었다. 내 커리어를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영역으로 노선을 확실히 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역시 시장이 가장 크고 활발한 제약바이오에 집중해야 한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 분야는 정했다. 이제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 필요한 스킬셋이 뭘까를 고민한다. 허나 이는 익히 알고 있었다. 빅파마, 즉 글로벌제약사와의 딜 경험. 우리나라 바이오텍들은 글로벌 임상의 자본, 경험, 역량이 매우 제한적이라 대부분 임상 전단계 혹은 초기 단계에서 빅파마에게 개발 약물 후속개발 권리를 넘긴다. 이를 licensing out (L/O)이라 하며, 국내에서는 (적절해 보이진 않으나) 기술이전이라고 표현한다. 빅파마 기술이전이 바이오텍 코스닥 상장의 필요조건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국내 바이오텍들은 이 경험을 매우 귀하게 여긴다. 이 분야에서, 이 경험을 쌓기 위해 역시 움직임이 필요했다.


위의 두 가지 주된 이유로 이직을 결정했다. 떠나기로 마음 먹었으니 행선지를 정해야 한다. 처음에는 첫 번째 이유, 즉 워라벨로 표현한 심적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그저 아무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허나 주변 분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이성을 되찾아 갔고, 두 번째 이유, 즉 커리어 방향성에 초점을 두며 고민했다. 

제약바이오 업계, 빅파마 딜 경험, 이 두 가지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일단 유망한 국내 바이오텍을 찾아야 한다. 역할은 사업개발(BD). 

(아, 논외로, 의외로 많은 분들이 내가 다시 미국으로 나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계셔서, 국내에 남는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많은 질문을 받았다. 하긴 나도 귀임시점부터 미국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언제부턴가 양가 부모님을 언제든 뵐 수 있는 한국을 떠날 생각을 한다는 게 쉽지 않다.)

올해 4월 처음으로, 업계에서 주목 받는 바이오텍을 이끌고 있는 대학원 동기 친구와 생각을 나누었다. 몇 주간 진심으로 이야기를 주고 받은 끝에 다시 한번 확인한 바가 있었다. 대기업 임원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두 가지 제약. 첫째, 한국 대기업에서는 바이오텍에서 실제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엣지를 갖출 수 없다(최근 삼성, SK, LG, 롯데의 바이오 사업은 조금 다른 얘기긴 하지만). 하여, 보통 운영관리 역할로 가며, 내가 하고자 하는 BD 역할로 가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기업 보다는 오히려 유한, 한미 등 제약사 경험이 유효하다. 둘째, 연봉. 매우 현실적인 문제다. 미국과 달리 국내 바이오텍은 일반적으로 대기업 임원 연봉을 맞출 수 없다. 원하는 자리로의 이직이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 일단 연봉을 포기한다. 외벌이로 네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을 마지노선으로 생각한다. 다음, BD 역할을 찾기 위해서는 엣지 없는 내 이력을 받아줄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지인 네트웍을 활용했다. 나의 기저역량을 믿어줄 수 있는, 그리고 내가 그분들의 말을 신뢰할 수 있는 성정, 그리고 업력을 지닌 소수의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매우 고맙게도 그분들께서 적극적으로 알아봐주셨다. 그분들은 VC, 즉 벤처캐피탈에서 일하는 분들이었으며, 그분들이 투자한 회사 중 괜찮은 곳으로 알아보았다.

괜찮은 곳에 대한 기준도 필요했다. 하방과 상방을 잡았다. 하방은 향후 몇 년 간 내 월급을 책임질 수 있을 정도의 자금력, 즉 투자금을 확보한 곳이다. 상방은 빅파마와의 딜이 가능하며 이를 기반으로 IPO 경험까지 겪을 수 있는 곳이면 커리어 목표와 부합하겠다. 

하여 지금의 회사로 오게 되었다. 


이제 한 달 조금 넘었다. 아직 허니문이지만 지금까지 겪은 바, 일은 많으나 하나하나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무엇보다 내 시간은 내가 시간을 컨트롤 할 수 있다. 어떤 미래가 펼쳐질 지 궁금하다.

[English] 다시 말해줄래로 Pardon?

주재원 생활 초반, 직장에서 현지 직원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 "Say that again?". 나의 어눌한 국산 영어에 많이 힘들었을, 그럼에도 알아들어야만 했던 동료들에게 미안했다. 

'다시 말해 줄래요'를 한국에서는 I beg your pardon? 혹은 Pardon me?로 입력되었고, 다음으로는 Sorry?가 입력되었다. Sorry 같은 경우는 가끔 들었지만 pardon 문장은 7년 동안 들은 기억이 없다.

가장 많이 들었던 표현은 Say that again? 혹은 What was that? 이다. 나도 많이 쓰려고 노력했으나, 내 that 발음이 dat 처럼 들린다고 하여 저 짧은 문장을 제대로 발음하기도 쉽지 않다. 

2026년 9월 10일 목요일

[English] Push, Pull에 철저한 미국 문

보스턴 생활 초반 재밌던 관찰 중 하나는, 상점의 문들이 안에서 나올 때는 밀고, 길에서 상가로 들어갈 때는 당기는 식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push, pull이 적혀있긴 하지만 그닥 신경쓰는 것 같진 않다. 미국에서는 아예 문 손잡이 자체가 그렇게 생겨 먹었다. 

출처: https://www.doorclosersusa.com/

전형적인 미국 손잡이다. 안쪽은 가로로 길고, 바깥쪽은 세로로 짧은 구조. 안에서는 밀고, 바깥쪽에서는 당기라는 거다. 찾아보니 딱히 명칭이 있다기 보다는, "Push Pull Set" 정도로 부르는 것 같다. Push bar와 pull handle의 조합. 그들도 굳이 부를 일이 있겠느냐마는. 내가 본 거의 모든 문은 안쪽에서 미는 구조였다. 

가끔 역으로 된 곳도 있긴 했다. 그중 하나는 Woburn에 있던 쌀국수집, Pho#1. 기억이 가물거려 찾아보니 거꾸로 된 구조가 맞다. 보스턴 생활 초기, 이 지역의 아시아 음식들은 찐이구나(한식 제외)라고 느끼게 해줬던 곳. 그립다.    


첫 직장 점심시간에 자주 들렀던 Pho#1 (출처: Google Maps)

회사 건물에서 자주 보이는 손잡이는 아래 그림처럼 눌러야 잠금이 해제되면서 열리는 형태였다. 찾아보니 이는 panic bar라고 한다. 이는 주로 emergency exit 에 있는데, 바깥에서는 열리지 않고, 긴급상황, 즉, panic 상황에서 밀기만 하면 latch가 풀리면서 쉽게 열리는 문이기 때문에 panic bar라 부른다고 한다.
Panic bar (출처: https://www.hooverfence.com/)


내가 찍은 사진 중 이런 손잡이를 찾다보니, 애들 어린이집 근처에 있던 빵집 사진을 발견했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분이 열어서 종종 갔었는데, 지금 찾아보니 permanently closed다. 시간은 흐른다. 



2026년 9월 5일 토요일

[English] 독차지하다, Hog

MBA 과정 중 가장 힘들었던 건 단연 조모임이었다. 국내 학부 때도 조모임을 선호치 않았는데 하물며 어린 미국 친구들과의 모임이란. 첫 학기 수업은 주말 모임까지 필요로 했고, 조원 네 명의 중간지점인 Harvard Square에서 모이기로 했다. 

일찍 도착한 조원 한 명이 여기저기 커피숍을 물색하다가 이렇게 문자를 보내왔다. 

"Harvard kids are hogging all the coffee shops."

이때 처음 접한 단어, hog는 남의 몫까지 독차지하다라는 뉘앙스다.

지나고서야 좋은 추억이지만, 다시 하라고 하면 여전히 힘들다.

 Harvard Sq.엔 칠면조 출몰 스팟이 있다. 번식기인 봄과, 추수감사절 시기에 자주 보인다. 2021년 4월 찍은 괴물들.



2026년 8월 28일 금요일

[프로젝트 장동팔경] ③ 청풍계

 

겸재의 장동팔경첩 중 청풍계(간송미술관 소장)

청휘각 터를 뒤로 하고 다시 가재우물 터를 지나며 필운대로9가길을 따라 내려왔다. 불과 한 달 전인데, 이때 어떤 생각을 하며 내려왔는지 기억이 없다. 아마 잠시 공상에 잠겨 그저 발걸음에 몸을 맡긴 것 같다. 그렇게 잠시나마 정처없이 내려가다, 다시 정신 차리고 청풍계로 키를 잡았다. 청풍계는 옥인동 북쪽 일대 전체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도에 목적지를 찍기 쉽지 않다. 다시 나의 길잡이, 『오래된 서울』를 꺼내본다. 접어둔 169 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청풍계의 맛을 조금이나마 직접 느껴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한 가지 코스를 소개한다. 인왕산 중턱에 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청풍계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길이다. 청운초등학교 옆의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백세청풍' 각자를 지나서 유진인재개발원의 오른쪽 계단을 올라선 뒤 청운어린이집 뒤쪽의 산책로를 찾아 들어서면 된다. 동네 주민들 외에는 잘 모르는 길이다. 천천히 걸어서 30분 정도면 송석원 근처로 내려올 수 있다. 길 중간에는 최근에 아주 튼튼한 철제 다리까지 걸렸는데 그곳이 청풍계의 중심 계곡이다..."

그래, 1차 좌표는 유진인재개발원이다. 이번에도 산중턱의 골목길을 고수하고자, 책에서 안내한 길과는 출발점이 조금 다르다. 책은 자하문로의 청운초등학교를 시작점으로 잡았으나, 나는 필운대로의 그물망 안에서 움직였다. 

청휘각 터 근방에서 청풍계로 향하는 길. 아래 표시된 별은 가재우물 터이며, 나는 거기서 조금 더 내려가다가 다시 발길을 위로 돌렸다. 도보 16분으로 찍혔다. 유진인재개발원 5시 방향의 청운현대아파트 남동쪽으로 난 길이 저자가 소개한 길이다 (출처: 네이버지도).

출발지점 부근 대축적으로 확대. 중간의 17번지를 끼고  U턴 하는 구간의 사진이 아래다 (출처: 네이버지도).

필운대로9나길 U턴 구간(1219p)

골목골목이 감탄만 자아낸다(1219p)

숨멎는 전망의 한 정원. 이런 곳은 얼마쯤 할까라는 생각과 함께 시선이 닿은 not for sale. 임장이 많나보다 생각했으나, 나중에 보니 브랜드명인듯 (1221p).

필운대로9나길의 좁은 고샅길을 지나 필운대로11길로 나왔다(1221p). 이제 옥인동에서 벗어나 신교동으로 접어든다.

우측에 인왕산 주민복합문화공간 조성 공사 안내 현수막을 끼고 올라가다, 길을 벗어났다는 것을 알았다(1222p).

알고보니 현수막 뒤로 난 신비롭기 그지없는 골목을 놓쳤던 것이다! (1224p)

이 골목으로 발을 딛자 지브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하다. 이날 최고의 길이었다. 옥인5길(1224p).

고개를 드니 7월의 백일홍 또한 눈부시다(1224p).

옥인5길 골목을 따라 경복교회 안내판이 보인다(1224p).

경복교회를 우측에 끼고 옥인5길을 따라 간다. 이때 감탄이 절정에 달해 처가에 있던 와이프에게 전화했으나 감동 전달에 실패(1225p).

이날 최고의 길이었던 만큼 유일하게 동영상을 남겨 봤다.

동영상 말미 직선거리 끝에 나오는 옥인5길 61번지 가택. 양갈래길에서 우측으로 간다(1230p).

곧 삼거리가 나온다. 내 인생에서 가장 귀여운 삼거리다. 이제 자하문로33길이다(1231p).

 자하문로33길은 더욱 험준한 오르막 골목인가 싶었다(1231p).

그러더니 곧 큰 길이 나온다. 이제부터 청운동이다(1232p).

길과 집들이 널찍하다. 고(故) 정주영 회장이 택했던 동네다(1234p).

드디어 도착한 유진투자증권의 인재개발원(1237p).

이제『오래된 서울』과 함께 청풍계에 본격적으로 안길 시간

저자의 안내를 다시 펴본다.

"...청풍계의 맛을 조금이나마 직접 느껴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한 가지 코스를 소개한다. 인왕산 중턱에 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청풍계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길이다. 청운초등학교 옆의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백세청풍' 각자를 지나서 유진인재개발원의 오른쪽 계단을 올라선 뒤 청운어린이집 뒤쪽의 산책로를 찾아 들어서면 된다. 동네 주민들 외에는 잘 모르는 길이다. 천천히 걸어서 30분 정도면 송석원 근처로 내려올 수 있다. 길 중간에는 최근에 아주 튼튼한 철제 다리까지 걸렸는데 그곳이 청풍계의 중심 계곡이다..."

12시 37분에 찍은 사진을 보면 정말 유진인재개발원 오른편으로 작은 돌계단이 보인다. 안내를 따라 여행할 때면, 묘사된 장면을 그대로 마주할 때 느껴지는 짜릿함이 있다. 설렘으로 첫 계단을 딛는다.

설렘의 돌계단(1237p)

조금 오른 후 뒤돌아 본 모습(1238p)

계단 옆으로 이런 주택도 보인다. 처음엔 여기가 저자가 말한 청운어린이집인가 했다. 말이 안되지, 이런 기슭에(1238p).


계단 끝에 또 설레는 정경이 기다린다. 이제 청풍의 계곡이다(1239p).

그런데 우측으로 곧 공원이 보인다. 청운공원이다. 청운별빛어린이집도 붙어 있다고 한다. 이제 계곡 깊이 들어갈 줄만 알았는데, 이내 인간의 손길이 느껴지니 아쉬웠다(1241p).

여기도 인왕산으로 통하는 입구 중 하나다. '인왕산 모르는 호랑이가 있나'라는 속담이 있다. 이곳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했다니 너무나도 흥미롭다(1241p).

이때부터는 한 동안 헤맸다. 쭉 가다보니 아뿔사, 차로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인왕산로였다. 인왕산로를 따라 하이킹을 하는 듯한 두 외국인 청년을 뒤로 하고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았다.  

"천천히 걸어서 30분 정도면 송석원 근처로 내려올 수 있다. 길 중간에는 최근에 아주 튼튼한 철제 다리까지 걸렸는데 그곳이 청풍계의 중심 계곡이다" 

라고 했는데, 송석원이 어디며 철제 다리가 어딘지 도무지 찾을 수 없다. 다시 수성동 계곡으로 이어지는 등산길을 따라 약 10분 정도 돌아다니며 찍은 자취만 남겨둔다. 이제는 폰 배터리도 방전 직전이라, 맘 놓고 찍을 수도 없다.



그러다 조선후기 대금 명인 정약대의 연습장 안내문을 만났다(1251p).

바로 옆 아래쪽으로 평상이 있고, 근처에 운동시설이 있다. 운동시설이 평평한 바위 같은 곳에 있는데 그 끝으로 난간이 없어 자칫하면 실족하겠다 싶었다. 이곳을 오늘 인왕산의 마지막 발걸음으로 하고 돌아갔다(1252p).

저자가 제시한 곳을 완벽하게 찾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철제 다리를 끝내 찾지 못했다. 길을 잘못든 건지, 집필 후 10년 동안 철제 다리가 사라진 건지 모르겠으나 인왕산 마지막 루트를 완성하지 못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애초에 내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청풍계였다. 겸재의 청풍계 그림을 다시 보자. 

겸재의 장동팔경첩 중 청풍계(간송미술관 소장)

전체 계곡을 담은 이 그림을 따라와 그 계곡 안에서 충분히 거닐고선, 어느 한 지점에 집착했던 것이다. 

앞서 청휘각 편에서 장동 김씨 가문이 어떻게 청풍계에 자리잡게 되었는지 다루었다. 숭유억불 시대임에도 불구, 학조대사 권세의 결과였다. 병자호란 절의의 상징인 김상용과 그의 후손들이 청풍계에, 동생 김상헌과 그 후손들은 장동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림에서 청풍계 곳곳에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김상용이 조성한 청풍각, 태고정, 늠연사(사당) 등으로 보인다. 계곡 전체를 터전으로 삼았다. 그중 하나의 건물 편액을 '와유암'으로 했는데, '명산을 누워서 유람한다'는 종소문의 글귀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나도 와유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오래된 서울』에서는 청풍계의 위치를 이렇게 설명한다.

"...청풍계 지역을 좀 더 살펴보자. 여기서는 청풍대와 그 남쪽의 창옥봉이 기준점이 되는데 서로 마주보는 전망대의 위치다. 청풍대는 지금 '백세청풍'이라는 바위 각자의 위쪽 널찍한 터로 추정되고, 창옥봉은 앞서 살펴본 정선의 그림 '동대상춘'에서 사람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앉은 동대의 다른 이름이다. 동대는 세심대라는 이름으로도 많이 불렸다."

청풍계는 무슨 뜻일까. 신병주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장동 김씨의 세거지가 된 곳은 김상용이 거처했던 청풍계(淸風溪)로서, 원래 푸른 단풍나무가 많은 계곡이라는 의미의 ‘청풍계(靑楓溪)’라고 불리다가 김상용이 이곳에 집터를 물려받으면서 맑은 바람이 부는 계곡이라는 의미인 ‘청풍계(淸風溪)’로 바뀌었다."

맑은 바람이 부는 계곡을 뒤로 하고, 약 두 시간의 인왕산 도보를 마무리 하며, 다시 유진인재개발원쪽으로 내려왔다. 폰 배터리는 거의 소진이다. 이제 다시 서촌, 자하문로로 향한다. 마지막 길에, 자칫 놓칠 뻔한 백세청풍 바위 각자를 만났다.

백세청풍 바위 각자. 중국 주자의 글씨를 탁본해 새긴 것으로 전해진다(103p).

백세청풍 바위를 마지막으로 폰은 꺼졌다. 자기 할 일을 다하고 간 기특한 녀석. 청운초등학교 직전 영진상회의 콜라 한 캔으로 프로젝트 장동팔경 Day 1을 마무리 하며, 경복궁역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