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뉴스를 보는데 곳곳의 폭설 소식이다. 올해는 보스턴의 눈을 한국이 가져갔구나 생각으로 보다가 심각한 상황에 이내 엄숙. 와중에 눈에 들어오는 장면들이 있다. 어떻게든 출근하려고 미끌거리며 끌고가는 차들, 어떻게든 등교하려고 엄마손 잡고 무릎까지 찬 눈을 밟고 나아가는 학생들. 다른 소식을 보니 3호선 어느 구간에 화재가 있어 상당 시간동안 운행이 중단되니 버스로 몰린 직장인들, 칼같이 추운 날씨에 꽉찬 버스를 40분 동안 보내면서 발을 동동 굴리는 모습에 보스턴 오기 전 내 모습이 겹친다.
예전에 미국에 한번씩 놀러가면 유학생 지인들에게 한국에 오고 싶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아니라고 말했다. 뭐 미국이 좋을 수 있지. 그런데 이유는 한국에 있었다. 너무 빡빡해서. 팍팍하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그게 이유라서 오기 싫기까지? 라고 생각했다.
종종 유학하던 지인들이 한국에 와서 미국은 어쩌네 하는 소리가 그닥 달갑지 않았다. 해서 미국에 살면서도 최대한 그런 주제에는 신중해지려고 하지만, 그럼에도 꺼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심각한 이야기 아니다. 그냥 일상에서 느끼는 이야기. 평범한 주변 사람들이 중시하는 가치는 '안전'이나 '가족' 같은 것이라는 평범한 이야기.
'안전'
많은 한국 회사들이 안전을 표어로 내건다. 본 작업장에서는 직원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며.. 이곳 보스턴은 눈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6년 전 처음 이곳에 나올 때도 쫄아서 왔다. 물론 눈이 잘 오더라. 근데 이 정도에 아침 라디오에서 주지사가 재택을 권고한다고? 제설도 기가 막히게 하는 곳에서. 근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의 가치는 근성이 아니었다. 직원들, 주민들의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한국의 회사들은 안전을 내세우며 수칙을 아주 멋지게 만들고 이를 근사하게 디자인해서 작업장 입구에 쌔끈한 간판으로 내걸며 아이템도 잘 나눠준다. 정작 눈 따위에 출근을 포기하는 일은 있을 수 없고, 출근했다고 한들 자랑거리도 못된다. 박대기님 정도 되면 살짝 으쓱거릴 정도.
'가족'
보스턴이 라성이나 뉴욕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교통체증이 있다. 그런데 왜 퇴근 정체가 오후 3시부터 시작되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알고보니 학교가 보통 그때면 끝난다. 그러면 아이들 챙기러 가는 부모들이 많다. 직장에서 이걸 건드리지 못한다. 적잖은 충격이었다. 가서 밥줘야 된단다. 지금은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을 보면 오히려 어라 할 정도로 나도 적응을 했나보다.
뭣이 중한가.
우리나라에서는 근면, 근성으로 대변되는 노동시간과 태도. 물론 생계를 위해 치열하게 일하는 분들도 많다. 우선순위의 문제다. 뭐가 우선이지? 생계에 직결되지 "않는" 노동시간에 대한 가치가 아직까지 높이 여겨지는 건 지난 몇 십년 간의 한국발전사를 돌이켜보면 이해를 못할 바는 아니지만, 이제 우리도 성숙기에 접어들지 않았나.
미국은 어떻게 보면 칼같이 살벌한 곳이다. 성과를 두고 늘 살얼음판이다. 직군에 따라 근로시간이 짤없는 곳도 물론 많다. 다만 우선시하는 가치를 일단 보장해주고 이후에 결과를 따진다.
우리나라도 역병 덕(?)에 재택이라는 시스템이 꽤 많은 검증을 거쳤다고 본다. 물론 나는 대면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으로 최소한의 스킨십은 있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지만, 굳이 교장의 재량으로 단축이나 휴교를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아이들을 폭설에 등교시켜야 했을까. 아니 교장이 휴교를 했다면 부모들은 가만히 있었을까.
전체 컨텍스트도 모르고 나만의 관점에서 대책없는 소리를 끄적여봤다. 그래도 반복적으로 가져오던 생각이기에 어느 정도 확신을 갖고 이야기한다. 우리 이제 선진국이잖아. 특히 안전에 대해서는 이제 사후 약방문의 대처는 좀 아니다 싶잖아 다들.
모두 가족과 안전하기 바라며 메리크리스마스를 바라며 이브에 소주 몇 잔하고 산타를 기다리며 남기는 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