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비소가 많은 이슈가 된다. 미국쌀에 비소함량이 높다는 언론의 보도들이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예전 목화재배 때부터 바구미 박멸을 위해 비소함량이 높은 살충제를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라나.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 비소에 대한 관심이 높고, 이에 PNAS에서 비소 관련 논문을 자주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닌 듯하다. 우리 박지영 박사도 2010년에 이 주제로 PNAS에 논문 내고 그해 코짜렐리상을 받았었고 (She deserves it, even more!). 그 근처로 우주친구 NASA에서도 비소에 관심을 표명했었으니, 이름에 As가 들어가는 기관들은 다 비소를 좋아하나 보다라고 날카롭게 추정한 기억도 있다.
나는 비소를 연구주제로 삼진 않았지만 그래도 어깨너머 관심은 있었다. 특히 조선시대 사약에 사용됐던 비상 (비소의 산화버전)의 성분이라는 점이 왠지 매력있었다. 왜 식물은 문제의 비소를 잘 흡수할까?
해답은 수송체와 주기율표에 있다.
일단 식물의 3대 비료는 질소, 인산, 가리라고 중고등 때 배, 아니 외웠다 (배움이 늘 수록 가리는 칼륨이고, 칼륨은 포타슘이라는, 최근 들은 포타슘은 pot ash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에 의한 잔잔한 센세이션의 기억도 있다). 이중에서 비소와 관련이 높은 놈이 있으니, 주기율표를 한번 들여다 보자.
(출처: https://sciencenotes.org/printable-periodic-table/)
오랜만에 보니 반갑다. 수헤리베 비씨엔오플네 나만알지펩시콜라 칼카. 무작정 암기도 언젠가는 써먹을 때가 있다. 아니, 많다. 칼카 다음에 전이원소들 지나서 4주기 15족에 As이 보인다. 근데 바로 위에? 인 (P)이 있다. 동족. 최외각전자수가 같은, 그래서 화학적 성질이 유사한 서로인 것이다. 비소와 관련이 높은 비료는 인산이었다.
식물이 손꼽아 필요로 하는 세 개의 영양소 중 하나이니 수송체는 얼마나 발달했겠는가. 그런데 이 화학적 성질이 유사한 비소가 인산수송체를 도용할 수 있으니 식물은 또 이를 얼마나 쭉쭉 빨아들이겠는가. 그래서 작물에 포함된 비소가 많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같은 족에 있다는 것은 단순히 같은 수송체로 흡수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흡수된 후에 체내에서도 인을 사용하는 자리에 비소가 대체될 수 있다는 말이다. 다른 게 아니라 이게 바로 '독'이다. 인은 우리가 잘 아는 생물의 에너지통화인 ATP에도 들어가니까 말 다했다. 지인분이 체내에 미치는 분자생물학 기작을 더 자세하게 분석해주실 테니 나중에 논문 나오면 안읽고 설명해달라 해야지 ㅎㅎ
(여담, 아파요아파요병을 일으키는 중금속인 카드뮴 (Cd)도 아연 (Zn)과 같은 족인데, 결국 우리 몸에 아연이 들어갈 자리에 지가 들어가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아연은 징크핑거 등 DNA에 붙어서 일하는 단백질들에게 매우 중요한 놈이니까 굉장히 심각해질 수 있어 보인다.)
조금 더 들어가자면 자연계에 존재하는 가장 흔한 비소의 형태는 arsenate와 arsenite 이 두 가지다. 인산을 닮은 놈은 arsenate이고, 산화정도에 따라 다른 형태도 존재하는데 물이 많아 질퍽질퍽한 논 같은 곳에서는 arsenite 형태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arsenite는 인산을 닮지 않았으니 인산 수송체를 통해서 흡수되지 않는다. 식물이 흡수를 못하면 참 좋을텐데 또 기어이 들어온다고 하니 바로 아쿠아포린을 통해서다. 징펭마 선생이 2008년에 이걸 밝혀내서 저널클럽으로 다뤘던 기억이 난다. 역시 피나스 논문에.
수송체 연구실에 있었으니 수송체가 익숙하고 그나마 재미도 있다. 이론으로는. 그런데 난 수송체 실험의 역량은 0이다. 몇 번 해봤으나 어렵고 특히 손이 나쁜 나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스트레스를 주는 실험이었다. 식물세포 껍데기를 벗겨서 수송체를 발현시키거나, 효모에 발현시키거나, 개구리 오오사이트에 발현시킨다. 보통 ABC수송체 연구하므로 ATP를 넣어줘야만 작동한다. 가장 힘든 경우는 발현시킨 다음에 세포 안팎을 뒤집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ATP와 붙는 부분이 세포 내에 있으면 ATP 주기가 힘들기 때문에 뒤집어서 세포 밖에 ATP를 줘도 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면 이놈이 펌핑하는 방향도 바뀐다. 내뱉던 놈이 흡입하는 놈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ATP뿐만 아니라 이 수송체가 나르는 대상물질인 기질을 넣어줄 때도 비슷한 이슈가 있다. 더군다나 이 기질은 트래킹이 돼야하기 때문에 방사성동위원소로 표식이 되어있고, 이때문에 실험도 방사성동위원소실에서 이상한 거 뒤집어 쓰고 진행해야 된다. 아...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스트레스가 마구 쌓이는 걸 보니 난 확실히 실험이랑 맞지 않나보다.
그래도 랩동료들의 훌륭한 성과들 덕분에 머리속에는 많이 남아 있음에 감사하며, 또 어제 재미있는 얘기를 해준 지인분께도 감사드리며, 그분 논문이 나오면 즐거이 경청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알려줘야지. 재미지다!
(동의보감에는 비소가 말라리아 치료 등의 목적으로 한약재로 쓰였다고 하는데. 신기한 게 참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