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0일 금요일

독극물의 분자생물학적 사유 (비소 이야기)

어제 지인들과 식사를 하는데, 잠깐 중금속 이야기가 나왔다. 한 분이 중금속이 동물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줄기세포와 유전자가위로 연구하고 있다고 하셨고, 그런 중금속으로 납이나 비소 등을 사용한다고 한다. 우리랩도 애기장대에 각종 중금속을 치고 표현형, 유전자형, 전사체 등등 분석하는 일을 루틴하게 했었기에 쉬이 내용이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비소 (Arsenic, As).

미국에서는 비소가 많은 이슈가 된다. 미국쌀에 비소함량이 높다는 언론의 보도들이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예전 목화재배 때부터 바구미 박멸을 위해 비소함량이 높은 살충제를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라나.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 비소에 대한 관심이 높고, 이에 PNAS에서 비소 관련 논문을 자주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닌 듯하다. 우리 박지영 박사도 2010년에 이 주제로 PNAS에 논문 내고 그해 코짜렐리상을 받았었고 (She deserves it, even more!). 그 근처로 우주친구 NASA에서도 비소에 관심을 표명했었으니, 이름에 As가 들어가는 기관들은 다 비소를 좋아하나 보다라고 날카롭게 추정한 기억도 있다.

나는 비소를 연구주제로 삼진 않았지만 그래도 어깨너머 관심은 있었다. 특히 조선시대 사약에 사용됐던 비상 (비소의 산화버전)의 성분이라는 점이 왠지 매력있었다. 왜 식물은 문제의 비소를 잘 흡수할까?

해답은 수송체와 주기율표에 있다.

일단 식물의 3대 비료는 질소, 인산, 가리라고 중고등 때 배, 아니 외웠다 (배움이 늘 수록 가리는 칼륨이고, 칼륨은 포타슘이라는, 최근 들은 포타슘은 pot ash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에 의한 잔잔한 센세이션의 기억도 있다). 이중에서 비소와 관련이 높은 놈이 있으니, 주기율표를 한번 들여다 보자.


(출처: https://sciencenotes.org/printable-periodic-table/)


오랜만에 보니 반갑다. 수헤리베 비씨엔오플네 나만알지펩시콜라 칼카. 무작정 암기도 언젠가는 써먹을 때가 있다. 아니, 많다. 칼카 다음에 전이원소들 지나서 4주기 15족에 As이 보인다. 근데 바로 위에? 인 (P)이 있다. 동족. 최외각전자수가 같은, 그래서 화학적 성질이 유사한 서로인 것이다. 비소와 관련이 높은 비료는 인산이었다. 

식물이 손꼽아 필요로 하는 세 개의 영양소 중 하나이니 수송체는 얼마나 발달했겠는가. 그런데 이 화학적 성질이 유사한 비소가 인산수송체를 도용할 수 있으니 식물은 또 이를 얼마나 쭉쭉 빨아들이겠는가. 그래서 작물에 포함된 비소가 많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같은 족에 있다는 것은 단순히 같은 수송체로 흡수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흡수된 후에 체내에서도 인을 사용하는 자리에 비소가 대체될 수 있다는 말이다. 다른 게 아니라 이게 바로 '독'이다. 인은 우리가 잘 아는 생물의 에너지통화인 ATP에도 들어가니까 말 다했다. 지인분이 체내에 미치는 분자생물학 기작을 더 자세하게 분석해주실 테니 나중에 논문 나오면 안읽고 설명해달라 해야지 ㅎㅎ

(여담, 아파요아파요병을 일으키는 중금속인 카드뮴 (Cd)도 아연 (Zn)과 같은 족인데, 결국 우리 몸에 아연이 들어갈 자리에 지가 들어가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아연은 징크핑거 등 DNA에 붙어서 일하는 단백질들에게 매우 중요한 놈이니까 굉장히 심각해질 수 있어 보인다.)

조금 더 들어가자면 자연계에 존재하는 가장 흔한 비소의 형태는 arsenate와 arsenite 이 두 가지다. 인산을 닮은 놈은 arsenate이고, 산화정도에 따라 다른 형태도 존재하는데 물이 많아 질퍽질퍽한 논 같은 곳에서는 arsenite 형태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arsenite는 인산을 닮지 않았으니 인산 수송체를 통해서 흡수되지 않는다. 식물이 흡수를 못하면 참 좋을텐데 또 기어이 들어온다고 하니 바로 아쿠아포린을 통해서다. 징펭마 선생이 2008년에 이걸 밝혀내서 저널클럽으로 다뤘던 기억이 난다. 역시 피나스 논문에.

수송체 연구실에 있었으니 수송체가 익숙하고 그나마 재미도 있다. 이론으로는. 그런데 난 수송체 실험의 역량은 0이다. 몇 번 해봤으나 어렵고 특히 손이 나쁜 나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스트레스를 주는 실험이었다. 식물세포 껍데기를 벗겨서 수송체를 발현시키거나, 효모에 발현시키거나, 개구리 오오사이트에 발현시킨다. 보통 ABC수송체 연구하므로 ATP를 넣어줘야만 작동한다. 가장 힘든 경우는 발현시킨 다음에 세포 안팎을 뒤집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ATP와 붙는 부분이 세포 내에 있으면 ATP 주기가 힘들기 때문에 뒤집어서 세포 밖에 ATP를 줘도 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면 이놈이 펌핑하는 방향도 바뀐다. 내뱉던 놈이 흡입하는 놈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ATP뿐만 아니라 이 수송체가 나르는 대상물질인 기질을 넣어줄 때도 비슷한 이슈가 있다. 더군다나 이 기질은 트래킹이 돼야하기 때문에 방사성동위원소로 표식이 되어있고, 이때문에 실험도 방사성동위원소실에서 이상한 거 뒤집어 쓰고 진행해야 된다. 아...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스트레스가 마구 쌓이는 걸 보니 난 확실히 실험이랑 맞지 않나보다.

그래도 랩동료들의 훌륭한 성과들 덕분에 머리속에는 많이 남아 있음에 감사하며, 또 어제 재미있는 얘기를 해준 지인분께도 감사드리며, 그분 논문이 나오면 즐거이 경청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알려줘야지. 재미지다!

(동의보감에는 비소가 말라리아 치료 등의 목적으로 한약재로 쓰였다고 하는데. 신기한 게 참 많다.)


2017년 10월 7일 토요일

SynBioBeta SF 2017

샌프란시스코 SynBioBeta 다녀왔다.

한국 다녀온지 일주일만에 서부를 다녀오려니 시차가 완전 꼬여서 내내 힘들었지만, 이를 보상할 만큼의 구성과 참여진이었다. 업체로는 Ginkgo, Modern Meadow, AMSilk, Synlogic 등 요즘 합성생물학계, 아니 전체 업계를 놓고 봐도 "핫"한 이름들이다. 더군다나 George Church와 Jim Collins가 왔으니 알차지 않기도 힘들어 보인다.



늘 논문과 기사로만 접하던 분들의 목소리와 제스쳐를 직접 접한다는 것은 상당히 기분 묘한 일이다. Jim Collins는 날렵한 외모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으나 그보다도 더 말이 빠르고 아이디어의 번뜩임이 느껴졌다. Church는 최고권위자로서 말 그대로 권위적인 태도를 보일 줄 알았으나, 상당히 부드럽고 교양있고 여유있는 모습이었다. 어쩌면 이게 진정한 권위자의 위엄일지도. Reshma Shetty는 작년 봄 샌디에고에서 보고 약 1년 반만에 봤는데, Jason Kelly와 더불어 Ginkgo는 언변으로 사람을 뽑는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인물이다. 물론 언변만큼 실력이 뒷받쳐 주니 어마무시한 펀딩을 이끌어 오고 있는 것이겠지만.

이번에 확인한 합성생물학계의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Food   #Consumer  

합성생물학이 적용되는 산업키워드다. 이번에 Memphis가 왔지만, Impossible Foods로 대표되는 대체뭐시기들. 지금은 Perfect Day로 이름을 바꾼 Muufi (효모로 우유 생산)도 참여했으며, 이번에 처음 알게된 Finless Foods라는 업체도 인상 깊었다 (cell culture로 생선 생산). 줄기세포와 세포배양 분야의 연구개발로 이제 별걸 다 만든다. Consumer 분야의 대표주자인 Modern Meadow의 세포로 배양한 가죽 (원래 동물세포였으나 여러 유전자 발현 이슈로 지금은 효모로 생산한다고 함)은 ZOA라는 브랜드명으로 며칠 전부터 뉴욕 MoMA에서 전시된다고 한다. 아디다스와 협업하는 AMSilk, 그리고 이런 textile을 염색하려는 Colorifix와 아예 잉크를 만드는 Living Ink 등이 눈에 띈다. 

#Cell-free process

작년에 비해 올해 눈에 띄는 기술키워드다. 이제 대사공학을 아예 세포 없이 진행하는 업체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이곳 보스턴의 Greenlight Biosciences도 있지만 Jim Collins도 본인 연구실에서 cell extract (lysate)로 이런 걸 진행하고 있다고 발표했고, 아예 cell-free 워크샵이 따로 마련돼 Synvitrobio (Church도 설립에 관여)와 Invizyne이 발표했다. 합성생물학계에서도 미니멀리즘 바람이 부는 것인가. 


아무튼 "합성생물학"이라는 용어의 힘은 기존 산업바이오의 실패를 완벽하게 덮고 있다는 데에서도 분명 기인할 것이다. 바이오에너지와 바이오화학으로 대표되었던 1세대 산업바이오의 실패. 기술이 다른가? 물론 요즘은 AI나 머신러닝 등을 바이오에 접목 시키는 등 확실히 기술측면에서도 진전이 있긴 하지만, 사실 미생물과 같은 생명체를 유전공학, 대사공학으로 개량하여 목표물질을 생산한다는 기본 프레임은 같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들이나 투자자들에게 1세대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상기시키면 이 업계는 커가기 힘들테고, 마침 합성생물학이라는 용어를 빌어 완전 새로운 산업처럼 둔갑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Church가 세웠던 LS9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려하지 않는다. 1세대 실패의 원인은 무엇일까? 가장 큰 건 모두 알다시피 유가이다. 석유를 대체하는 에너지를 만들고 석유화학을 대체하는 화학물질을 만들려고 했는데, 유가가 이렇게 낮으면 바이오메리트는 사라진다. 하지만 그것뿐일까? 나는 "생산"에만 집중했던 사업모델 자체도 실패의 큰 원인이라고 본다. 만들 수 있다면 누군가는 사갈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었던 것이다. 지금 컨슈머나 음식 쪽으로 향하고 있는 이런 흐름은 1세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긴 하다. 하지만 항상 고객이 원하는 것을 -B2B든 B2C든- 밤낮으로 고민하지 않으면 지금의 이 붐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잔인하게, 마치 아무도 더이상 1세대 산업바이오를 언급하지 않듯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SynBioBeta는 여느 컨퍼런스와는 달리 일반인들도 참여시키려는 노력이 매우 고무적이다. 마치 페이스북이나 애플 같은 IT업계처럼, 소비자들에게 신선한 인식의 바람을 일으키려는 노력은 바람직하다. 특히 내년에는 컨퍼런스를 일주일간 열면서 일반인이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할 예정이라고 한다. 



금문교를 DNA 나선으로 그릴 생각을 하다니.. 한참을 들여다보며 감탄했다. 그림의 신선함만큼이나 내년 프로그램 기획 또한 인상적이므로, 사뭇 기대된다. 합성생물학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