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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겸재의 장동팔경첩 중 청풍계(간송미술관 소장) |
청휘각 터를 뒤로 하고 다시 가재우물 터를 지나며 필운대로9가길을 따라 내려왔다. 불과 한 달 전인데, 이때 어떤 생각을 하며 내려왔는지 기억이 없다. 아마 잠시 공상에 잠겨 그저 발걸음에 몸을 맡긴 것 같다. 그렇게 잠시나마 정처없이 내려가다, 다시 정신 차리고 청풍계로 키를 잡았다. 청풍계는 옥인동 북쪽 일대 전체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도에 목적지를 찍기 쉽지 않다. 다시 나의 길잡이, 『오래된 서울』를 꺼내본다. 접어둔 169 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청풍계의 맛을 조금이나마 직접 느껴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한 가지 코스를 소개한다. 인왕산 중턱에 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청풍계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길이다. 청운초등학교 옆의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백세청풍' 각자를 지나서 유진인재개발원의 오른쪽 계단을 올라선 뒤 청운어린이집 뒤쪽의 산책로를 찾아 들어서면 된다. 동네 주민들 외에는 잘 모르는 길이다. 천천히 걸어서 30분 정도면 송석원 근처로 내려올 수 있다. 길 중간에는 최근에 아주 튼튼한 철제 다리까지 걸렸는데 그곳이 청풍계의 중심 계곡이다..."
그래, 1차 좌표는 유진인재개발원이다. 이번에도 산중턱의 골목길을 고수하고자, 책에서 안내한 길과는 출발점이 조금 다르다. 책은 자하문로의 청운초등학교를 시작점으로 잡았으나, 나는 필운대로의 그물망 안에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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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휘각 터 근방에서 청풍계로 향하는 길. 아래 표시된 별은 가재우물 터이며, 나는 거기서 조금 더 내려가다가 다시 발길을 위로 돌렸다. 도보 16분으로 찍혔다. 유진인재개발원 5시 방향의 청운현대아파트 남동쪽으로 난 길이 저자가 소개한 길이다 (출처: 네이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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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지점 부근 대축적으로 확대. 중간의 17번지를 끼고 U턴 하는 구간의 사진이 아래다 (출처: 네이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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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운대로9나길 U턴 구간(1219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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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골목이 감탄만 자아낸다(1219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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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멎는 전망의 한 정원. 이런 곳은 얼마쯤 할까라는 생각과 함께 시선이 닿은 not for sale. 임장이 많나보다 생각했으나, 나중에 보니 브랜드명인듯 (1221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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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운대로9나길의 좁은 고샅길을 지나 필운대로11길로 나왔다(1221p). 이제 옥인동에서 벗어나 신교동으로 접어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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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측에 인왕산 주민복합문화공간 조성 공사 안내 현수막을 끼고 올라가다, 길을 벗어났다는 것을 알았다(1222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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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보니 현수막 뒤로 난 신비롭기 그지없는 골목을 놓쳤던 것이다! (1224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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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골목으로 발을 딛자 지브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하다. 이날 최고의 길이었다. 옥인5길(1224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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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를 드니 7월의 백일홍 또한 눈부시다(1224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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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인5길 골목을 따라 경복교회 안내판이 보인다(1224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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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교회를 우측에 끼고 옥인5길을 따라 간다. 이때 감탄이 절정에 달해 처가에 있던 와이프에게 전화했으나 감동 전달에 실패(1225p).
이날 최고의 길이었던 만큼 유일하게 동영상을 남겨 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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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영상 말미 직선거리 끝에 나오는 옥인5길 61번지 가택. 양갈래길에서 우측으로 간다(1230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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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삼거리가 나온다. 내 인생에서 가장 귀여운 삼거리다. 이제 자하문로33길이다(1231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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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하문로33길은 더욱 험준한 오르막 골목인가 싶었다(1231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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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곧 큰 길이 나온다. 이제부터 청운동이다(12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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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과 집들이 널찍하다. 고(故) 정주영 회장이 택했던 동네다(1234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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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도착한 유진투자증권의 인재개발원(1237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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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오래된 서울』과 함께 청풍계에 본격적으로 안길 시간 |
저자의 안내를 다시 펴본다.
"...청풍계의 맛을 조금이나마 직접 느껴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한 가지 코스를 소개한다. 인왕산 중턱에 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청풍계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길이다. 청운초등학교 옆의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백세청풍' 각자를 지나서 유진인재개발원의 오른쪽 계단을 올라선 뒤 청운어린이집 뒤쪽의 산책로를 찾아 들어서면 된다. 동네 주민들 외에는 잘 모르는 길이다. 천천히 걸어서 30분 정도면 송석원 근처로 내려올 수 있다. 길 중간에는 최근에 아주 튼튼한 철제 다리까지 걸렸는데 그곳이 청풍계의 중심 계곡이다..."
12시 37분에 찍은 사진을 보면 정말 유진인재개발원 오른편으로 작은 돌계단이 보인다. 안내를 따라 여행할 때면, 묘사된 장면을 그대로 마주할 때 느껴지는 짜릿함이 있다. 설렘으로 첫 계단을 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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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렘의 돌계단(1237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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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오른 후 뒤돌아 본 모습(1238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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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단 옆으로 이런 주택도 보인다. 처음엔 여기가 저자가 말한 청운어린이집인가 했다. 말이 안되지, 이런 기슭에(1238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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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단 끝에 또 설레는 정경이 기다린다. 이제 청풍의 계곡이다(1239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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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측으로 곧 공원이 보인다. 청운공원이다. 청운별빛어린이집도 붙어 있다고 한다. 이제 계곡 깊이 들어갈 줄만 알았는데, 이내 인간의 손길이 느껴지니 아쉬웠다(124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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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도 인왕산으로 통하는 입구 중 하나다. '인왕산 모르는 호랑이가 있나'라는 속담이 있다. 이곳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했다니 너무나도 흥미롭다(1241p). |
이때부터는 한 동안 헤맸다. 쭉 가다보니 아뿔사, 차로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인왕산로였다. 인왕산로를 따라 하이킹을 하는 듯한 두 외국인 청년을 뒤로 하고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았다.
"천천히 걸어서 30분 정도면 송석원 근처로 내려올 수 있다. 길 중간에는 최근에 아주 튼튼한 철제 다리까지 걸렸는데 그곳이 청풍계의 중심 계곡이다"
라고 했는데, 송석원이 어디며 철제 다리가 어딘지 도무지 찾을 수 없다. 다시 수성동 계곡으로 이어지는 등산길을 따라 약 10분 정도 돌아다니며 찍은 자취만 남겨둔다. 이제는 폰 배터리도 방전 직전이라, 맘 놓고 찍을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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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다 조선후기 대금 명인 정약대의 연습장 안내문을 만났다(1251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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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옆 아래쪽으로 평상이 있고, 근처에 운동시설이 있다. 운동시설이 평평한 바위 같은 곳에 있는데 그 끝으로 난간이 없어 자칫하면 실족하겠다 싶었다. 이곳을 오늘 인왕산의 마지막 발걸음으로 하고 돌아갔다(1252p). |
저자가 제시한 곳을 완벽하게 찾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철제 다리를 끝내 찾지 못했다. 길을 잘못든 건지, 집필 후 10년 동안 철제 다리가 사라진 건지 모르겠으나 인왕산 마지막 루트를 완성하지 못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애초에 내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청풍계였다. 겸재의 청풍계 그림을 다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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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겸재의 장동팔경첩 중 청풍계(간송미술관 소장) |
전체 계곡을 담은 이 그림을 따라와 그 계곡 안에서 충분히 거닐고선, 어느 한 지점에 집착했던 것이다.
앞서 청휘각 편에서 장동 김씨 가문이 어떻게 청풍계에 자리잡게 되었는지 다루었다. 숭유억불 시대임에도 불구, 학조대사 권세의 결과였다. 병자호란 절의의 상징인 김상용과 그의 후손들이 청풍계에, 동생 김상헌과 그 후손들은 장동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림에서 청풍계 곳곳에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김상용이 조성한 청풍각, 태고정, 늠연사(사당) 등으로 보인다. 계곡 전체를 터전으로 삼았다. 그중 하나의 건물 편액을 '와유암'으로 했는데, '명산을 누워서 유람한다'는 종소문의 글귀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나도 와유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오래된 서울』에서는 청풍계의 위치를 이렇게 설명한다.
"...청풍계 지역을 좀 더 살펴보자. 여기서는 청풍대와 그 남쪽의 창옥봉이 기준점이 되는데 서로 마주보는 전망대의 위치다. 청풍대는 지금 '백세청풍'이라는 바위 각자의 위쪽 널찍한 터로 추정되고, 창옥봉은 앞서 살펴본 정선의 그림 '동대상춘'에서 사람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앉은 동대의 다른 이름이다. 동대는 세심대라는 이름으로도 많이 불렸다."
청풍계는 무슨 뜻일까. 신병주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장동 김씨의 세거지가 된 곳은 김상용이 거처했던 청풍계(淸風溪)로서, 원래 푸른 단풍나무가 많은 계곡이라는 의미의 ‘청풍계(靑楓溪)’라고 불리다가 김상용이 이곳에 집터를 물려받으면서 맑은 바람이 부는 계곡이라는 의미인 ‘청풍계(淸風溪)’로 바뀌었다."
맑은 바람이 부는 계곡을 뒤로 하고, 약 두 시간의 인왕산 도보를 마무리 하며, 다시 유진인재개발원쪽으로 내려왔다. 폰 배터리는 거의 소진이다. 이제 다시 서촌, 자하문로로 향한다. 마지막 길에, 자칫 놓칠 뻔한 백세청풍 바위 각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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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세청풍 바위 각자. 중국 주자의 글씨를 탁본해 새긴 것으로 전해진다(103p). |
백세청풍 바위를 마지막으로 폰은 꺼졌다. 자기 할 일을 다하고 간 기특한 녀석. 청운초등학교 직전 영진상회의 콜라 한 캔으로 프로젝트 장동팔경 Day 1을 마무리 하며, 경복궁역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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