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2022.6.7. 게시물
이양역지(以羊易之) - 어떤 이를 안다는 것
제나라 선왕이 제물로 끌려가는 소를 가여이 여겨 양으로 바꾸라고 지시한다. 이에 맹자는 양도 불쌍하기는 마찬가지 아니냐고 말씀드린다. 맹자가 해석한 선왕의 소와 양에 대한 태도의 차이는, 소는 직접 봤기 때문에 불쌍히 여겼다는 점에서 기인하다. 보지도 못한 양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기는 힘들 터다. 앎과 알지 못함.
길을 가다 유기견을 보면 가엾은 떠돌이개, 혹은 무서운 야생개 정도로 여기거나,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다반사다. 동물농장에서 어떤 유기견의 사연을 몇 십 분 보노라면 어쩔 땐 눈물이 날 정도로 먹먹하다. 앎과 알지 못함.
잠깐 스쳐간 상사 중에 부하직원에 대한 정보는 주변에서만 캐고, 정작 그 부하직원을 통해서 인생이나 경험에 대해 들으려고는 하지 않는 분이 계셨다. 사회생활에서 꽤나 힘든 시기였다. 그분의 의도가 그러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분에게 부하직원은 소가 아닌 양일 뿐이었다. 알지 못함.
반면 사회생활을 처음으로 시작할 때 당시 사장님께서 전 직원들에게 돌리는 이메일 중에 기억나는 문구가 있다: 어떤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 사람 인생 전체가 오는 것. 사회 초년생인 나의 가슴을 울리는 말이었다. 앎.
정작 나는 직장 동료들이 걸어온 인생을 알려고 하고 있는지 수시로 자문한다. 사람이 좋아 생기는 궁금함, 그로부터 오는 앎, 앎에서 깊어지는 공감. 공감이 기반이 된 공동체라야 일할 맛이 났다. 끝까지 알기 싫은 사람도 있는 건 함정.
굳이. 직장에서 굳이. 직장에 대한 가치관은 국가별, 세대별, MBTI별 등등등등 너무 다양하다. 다만 누가 곁에 있든 그 사람은 내 상상이상의 인생의 깊이가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살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