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18일 월요일

볕을 쬐면 잠이 잘 온다?

맑은 하늘을 참으로 좋아한다. 2016년 한국을 떠나기 전 뿌옇게 흐렸던 하늘과 이곳 미국의 눈부신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저런 생각이 절로 든다. 북위 42도인 이곳 보스턴은 겨울이 길고 이 기간 동안에는 낮이 귀해서 해가 뜨면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태양에 맨살을 노출시킨다. 추우니 얼굴 정도라도. 비타민 D 지참도 필수라고 한다.

오늘 다룰 이야기는 세로토닌이지만, 동식물의 광수용체, 광합성 등 생물의 빛 반응에 관련된 내용들을 손 가는대로 살펴보겠다 (햇빛과 재채기 현상을 블로그에서 다루기도 했었다). 마침 말이 나왔으니 비타민 D부터. 뼈 건강에 중요한 비타민 D는 흔히 햇빛을 쬐면 합성된다고 한다. 어릴 적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너무 이해가 안됐다. 빛에너지가 화학에너지로 전환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빛이 물질로 변한다고? 나이를 먹으며 빛의 성질에 대해 여러 방면으로 정의를 내릴 수 있음을 배우고, 조금씩 가정은 할 수 있게 되었다. 빛을 어떤 물질의 산화환원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친구로 정의를 해보면, 체내에 존재하던 비타민 D의 전구체가 빛에 의해 비타민 D가 될 수 있겠다는 가설. 혹은 빛을 어떤 화학결합을 파괴할 수 있는 자외선 에너지로 정의해보면, 피부에 비타민 D가 어떤 결합에 의해 매달려 있다가 빛에 의해 꼬리가 끊어져 활성이 있는 비타민 D로 떨어져 나간다는 가설 등등. 이 정도 추론은 좋아하지만 막상 실제 어떤지를 찾아보지는 않고 살았던 것 같다. 이렇게 글대라도 잡아야 그나마 찾아보지 ㅎㅎ

Vitamin D는 워낙 잘 알려진 친구라 굳이 논문을 뒤질 필요도 없었다. 역시 나의 가설보다 더 복잡한 무언가가 있었다. 역시 공부를 해야해. 한 웹페이지에서 가져온 그림이다.

출처: http://www.endocrinesurgery.net.au/vitamin-d/

빛의 성질 중 "열"이 화학반응에 관여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그리고 빛에 의해서 만들어진 비타민 D (cholecalciferol)가 생리활성형이 아니었다! 간과 신장이 마무리를 지어주는구나. 역시 인체는 복잡하고 신기한, 다양한 세포, 조직, 기관들의 오케스트라임을 늘 배운다.

UV-B가 첫 반응을 일으키므로 자외선이 차단되는 필름으로 코팅된 창 안에 있거나 썬크림을 바르면 그 효과가 줄어들겠다 (이걸 잘 해석해야 한다. 모든 현상에는 n장 n단이 있다. 자외선이 일으키는 다른 부작용들은 항상 염두에 두자). 웹페이지에 의하면 5~15분 정도의 햇빛을 일주일에 4~6회 정도 쬐여주라고 한다. 그리고 위 그림에서 최초 전구체인 7-dehyrocholesterol은 음식으로 섭취되는 것일테니 이것저것 골고루, 특히 연어 같은 생선류를 잘 먹어두자.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세로토닌 이야기를 하기 전에, 생물이 빛에 반응한다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눈은 어떻게 빛을 감지해서 신경으로 전달하여 뇌에서 어떤 영상을 떠오르게 하는 것일까. 광합성도 그렇다. 식물은 어떻게 빛에너지로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하여 유기체의 근원인 탄소를 고정시킬까. 또 식물은 어떻게 빛의 파장을 구분해서 발아나 기공개폐 등 생명현상을 조절할까. 이게 말이 돼?

먼저 우리의 눈은 간상세포에 로돕신이라는 광수용체가 존재한다 (GPCR 수용체다). 생물2에서 배운 일련의 광화학 반응이 로돕신에서 시작된다. 빛을 받은 로돕신은 옵신과 레티날로 분해되고 이후의 신호전달과정을 통해 시신경을 흥분시키는 것이다. 2017년 12월에는 이 사이클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대상으로한 눈병 유전자치료제가 FDA 승인을 받기도 했다 (Spark Therapeutics의 Luxturna). 어쨌든 이 과정은 빛의 광자 (photon)가 로돕신 내의 레티날 구조를 바꿔주면서 시각에 이르는 신호전달을 일으키는 과정이다 (아래 그림에서 cis가 빛에 의해 trans로 바꼈다).





결국 광자가 어떤 분자 내로 흡수되면서 일종의 전자전달을 일으킨 것이다. 물리와 화학의 오묘한 조화. 이게 우리 동물이 빛을 받아들이는 원리다.

식물은 어떨까.

식물은 광합성으로 잘 알려져있다. 그런데 광합성을 담당하는 엽록소는 엄밀히 말하면 광수용체로 분류하기 어렵다. 광수용체의 정의가 빛을 받아들이는 부분과 이와 연결된 단백질이 함께 있어 일련의 후속 신호전달 과정을 일으키는 분자를 가르키기 때문이다. 엽록소는 광을 수용하긴 하지만, 이런 단백질과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 후속 전자전달을 통해 탄소고정을 유도하지만 신호전달 과정은 아닌 것이다.

어쨌든 나의 궁극적 의문은 어떻게 분자가 빛을 수용하느냐였고, 엽록소의 구조가 이를 설명해준다.

출처: 엽록소는 Wikipedia, 파이토크롬은 Ihalainen JA et al., Front Mol Biosci (2015)

그림에서 함께 본 식물의 대표적인 광수용체는 파이토크롬이다. 적색 부근의 파장을 흡수하는 이 수용체는 광수용체와 함께 있는 단백질 부분이 (광수용체 정의에 부합한다) 식물의 성장과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빛을 수용하는 안테나 부분을 보면 엽록소와 파이토크롬이 서로 비스무레 하다. 저러한 고리들과 이중결합, 단일겹합이 번갈아가면서 있는 구조가 광자를 수용하기에 최적화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구조가 광수용체마다 달라 각각 흡수하는 파장이 다른 것이다.

아무튼 동식물은 이러한 분자를 진화적으로 체내에 가지고 있으면서 빛을 요리조리 활용하게 되었다! 참으로 신기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빛을 받아들인다니!

다시 처음으로.

드디어 세로토닌 이야기를 해보자. 세로토닌도 예전에 블로그에서 다룬 것도 아니고 다루지 않은 것도 아닌 정도로 그림에서만 잠깐 언급한 적이 있다. 잠에 대한 글이었는데, 아무튼 편안한 수면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물질이다. 수면물질인, 그래서 수면제로 많이 사용되는 멜라토닌의 직접 전구체이기도 하다.

그런데 세로토닌도 햇빛을 받으면 합성이 증가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게 사실일까? 이건 생각보다 많이 연구된 바가 없어 (기사들은 현상만 다룰 뿐) 논문도 찾기가 힘들었다. 2013년
Wright State University School of Medicine 연구진이 Innovations in Clinical Neuroscience에 발표한 논문이 있었다. 제목은 다음과 같다.

Sunshine, Serotonin, and Skin: A Partial Explanation for Seasonal Patterns in Psychopathology?


계절의 변화에 따라 정신병리학적인 패턴이 함께 변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주요원인물질로 세로토닌을 언급한 것이다. 세로토닌은 우리의 무드를 조절하는 물질로 잘 알려져있기 때문이다.

세로토닌은 신경전달물질로 중추신경계, 장내점막, 혈소판에 위치한다. 이중 장은 세로토닌 합성의 주요장소로 최근 마이크로바이옴, 장내균총에 의해 우리 기분이 조절된다는 이야기도 이를 근거로 나온 말이다. 세로토닌은 아미노산 중 하나인 트립토판으로 합성된다. 트립토판은 바나나, 우유에 많다. 불면증에 우유 먹으라는 이야기는 여기서 나왔다. 참고로 식물의 주요 성장호르몬인 옥신의 전구체도 트립토판이라 예전 공동연구하던 스위스 교수님이 이걸로 말장난을 치기도 했었다. 안받아줬다.

아무튼 햇볕의 양과 세로토닌 양의 상관관계에 대한 보고는 몇몇 있다고 한다. 논문에서 참고문헌으로 언급한 논문 중 1989년에 발표된 "Near-UV activation of enzymatic conversion of 5-hydroxytryptophan to serotonin"라는 제목의 논문에 의하면, 음, 제목 그대로다. 또한 계절에 따라 혈소판이 세로토닌을 흡수하는 정도 등에도 변화가 있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뇌의 세로토닌 수용체가 빛이 있을 때 세로토닌과 결합을 더 잘 한다는 보고도 있다고 한다. 이건 양의 문제가 아니라 활성의 문제다. 그리고 건강한 성인남성 101명의 혈액을 1년 간 채취하여 세로토닌 양을 측정한 결과 겨울에 그 수치가 가장 낮았다는 연구도 있다. 이건 양의 문제 맞네. 결국 "햇빛과 세로토닌 양/활성에는 상관관계가 있다"는 참인 명제라고 해도 크게 무리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나의 의문은 이게 아니라 why 였다. 논문에 약간의 설명이 뒤따른다. 세로토닌은 피부조직에서도 발견된다고 한다. 피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냐, 다른 곳에서 만들어져서 이동해 온 것이냐. 전자여야지만 내 의문에 대한 답에 가까워 질텐데. 실제로 세로토닌 합성에 관여하는 tryptophan hydroxylase와 같은 효소들도 피부에 존재한다고 한다. 수송체도 마찬가지. 논문에서 인용한 다른 논문 (Serotoninergic and melatoninergic systems are fully expressed in human skin)에 따르면 피부에서 독립적으로 완전히 세로토닌 합성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많이 가까워졌다. 그럼 이제 빛과의 관계만 알려다오. 감질감질.

결국 명확한 답을 찾긴 힘들었다. 다만 마지막으로 인용한 논문 (Impact of UVA exposure on psychological parameters and circulating serotonin and melatonin)에서는 불투명한 고글을 씌우고 3주간 빛을 처리했을 때 대조군 대비 세로토닌의 양이 증가한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눈이 빛을 수용하여 이를 통해 세로토닌 합성에 기여한다는 retinoraphe tract 가설을 배제하여 순수하게 피부의 빛 노출에 의해 세로토닌이 증가하는지를 확인한 연구다.

결국 의학적 시각에서의 임상결과는 많으나 분자생물학적인 연구는 별로 된 것이 없다. 비타민 D처럼 깔끔하게 정리된 빛에 의한 합성과정을 기대했던 것인데 (저 retinoraphe tract 논문도 찾아보니 현상정리만 되어 있다). 그래도 많이 배웠다.


오늘의 설약: 햇볕을 쬐면 잠이 잘 올 것 같네요. 그런데 기작은 아직 잘 몰라요.


요즘 불면기가 보일 때면 낮에 산책을 한다 in the sun.

* 페이스북 링크: https://www.facebook.com/illozika/posts/10158133488655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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