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그렇겠지만 이곳 미국에서는 특히 아시아 부모가 갓난아기를 데리고 소아과에 가면 한 번 더 주의를 주는 사항이 있다. 생후 1년 이내에는 꿀을 먹이지 말라는 거다. 아시아권에서는 꿀이 민간에서 종종 사용되는 요법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더라. 왜 먹이면 안되는 건데라고 물어보면 대답에 보툴리눔이 등장한다.
Science Insider에서 최근에 이를 설명해주는 동영상을 아주 잘 만들었다. 이 3분짜리 동영상을 잘 보면 굳이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다.
요약하면 이렇다.
- 꿀에는 벌이 데리고 온 Clostridium botulinum 포자가 들어있다 (모든 꿀은 아니고 약 8%의 꿀이).
- 이 박테리아는 보튤리눔 톡신 (보톡스)을 만드는 녀석이지만 포자상태는 휴면기라 이를 만들지 않는다.
-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꿀을 먹어도 무해하다.
- 하지만 4~6개월 된 갓난아기는 모유/분유를 떼고 이유식으로 넘어가는 시점이기 때문에 장내균총이 한번 갈아지고, 이때 Clostridium botulinum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된다.
- 그렇게 이 균이 자라게 되면 보톡스가 생성되고 이게 혈관을 타고 들어가 근육에 악영향을 미친다.
- FDA에서는 1년 이내의 아기에게는 꿀을 먹이지 말라고 권고한다.
Science Insider에서 워낙 잘 다뤄줬다. 그래도 예의상 논문 하나는 봐줘야지. 2012년 영국 연구진이 케이스 보고를 한 논문을 찾았다 (CO Abdulla et al., 2012).
파키스탄계의 3개월 된 이 아이는 식욕부진, 변비, 기침, 무기력증을 10일 동안 보였다고 한다 (저것만 봐서는 일반 아이랑 크게 다를 바는 없어 보인다만, 가장 확실한 증상은 무기력증 -floppiness- 인 것 같다). 원인을 찾기 위해 이런저런 검사를 했고, 분변 DNA 분석 결과 Clostridium botulinum type A 신경독성 유전자가 검출됐다고 한다. 그리고 그 동안 아기가 먹었던 꿀을 검사해봤더니 저녀석의 포자가 발견됐다고 한다. 병원에서 이 독소의 항체 (human-specific botulinum immunoglobulin)를 투여했고 완치가 되었다고.
논문 볼 때 result 보다 introduction이나 discussion을 재밌게 본다. 파이펫 보다는 교과서 타입. 근데 이 논문은 질병 케이스 보고라 MD를 달고 있지 않은 이상 discussion이 더 재밌을 수 밖에 없긴 하다. 여기서는 보톡스 발견 역사로 시작한다. 유아 보톡스 증상 (infant botulism)은 1976년에 처음으로 보고가 되었다고 한다. Lancet에. 그 이후 모든 대륙에서 증상이 발견됐지만 아프리카에서는 2012년 당시까지 보고가 된 것이 한 건도 없었다고 한다. 논문에서는 사례가 없어서가 아니라 진단기술의 부재로 추측한다. 미국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데 위의 동영상을 보면 그래도 연간 100건 이내라네. 재밌게도 본 논문은 영국에서 보고된 12번째 사례라고 한다. 차는 많이 마셔도 꿀을 민간요법으로는 잘 안쓰나 보다. 어쨌든 갓난아이가 이에 노출되면 심하면 사망에까지 이른다고 한다. 절대 조심해야겠다. 이 논문에서도 infant gut flora에 대한 언급이 있는 걸 보니 이놈의 균이 장에 점착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장내균총이 잘 형성되어 있어야 하고, 안정적인 장내균총 형성에 적어도 생후 1년은 걸리는 듯 하다.
피부에 양보하라.
프로폴리스 때문에 꿀 들어간 화장품도 유행했던 것 같던데. 혹시 꿀을 직접 바르는 분들도 계셨을지? 꿀속에 이렇게 보톡스 균의 포자가 있다는 걸 노린 빅피처? 물론 녀석들 피부에선 못자라겠지만.
어쨌든 보톡스는 미용으로 유명해졌으니 잠깐 살펴보자면, 우선 쁘띠를 위한 보톡스는 그 용량이 매우 적어 국소부위에만 영향을 미치니 독성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럼 주름을 펴주는 보톡스의 작용기전을 뭘까?
그림 출처: 링크 1, 링크 2 |
이번 주 바이오제약 업계에서는 또 어마어마한 발표가 터졌다. 휴미라의 AbbVie가 Allergan을 $63B, 한화 약 70조원에 인수할 것이라는 뉴스였다. Allergan이 바로 보톡스라는 상표명을 만들어낸 미국의 제약사다 (이 글에서 보톡스 보톡스 했지만 사실 정식명칭으로 보툴리눔 톡신으로 쓰는게 맞다). 이런 빅딜을 보고 있자니 이제 1.5년 된 아빠 문득 꿀이 떠올라 간만에 블로그질 해봤다. 오늘은 짧은 글이라 설약은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