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25일 일요일

햇빛만 보면 재채기? (ACHOO 증후군과 23andMe)

고교 시절 햇살 좋던 어느 날, 이면수라는 친구가 자기는 햇빛만 보면 재채기가 나온다고 했다. 나는 말도 안된다며 웃었고, 그날 이후로 거짓말 같이 실내에서 햇볕으로 나오는 순간 콧등이 간질거리며 같은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게 도대체 뭐지 라는 생각에 주변에 수소문해보니 보통 햇빛알레르기라고 부르고 있었다. 햇빛알레르기?

이상했다. 내가 알고 있는 알러지는 면역반응에 기반하는데, 빛 자체가 항원으로 작용한다고? 물리적인 에너지가 화학적인 항원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비타민 D라는 화학물질도 햇빛의 구성성분인 자외선에 의해 피부의 콜레스테롤이 화학변형을 일으켜 합성되는 것이니, 빛에너지가 어떤 화학적인 항원을 만들어 내는 것도 가능은 하겠다.)

과학적인 호기심이 딱 요정도까지였던 나는 궁금증을 잘 견디며 이후 20여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 조금 잘 나가고 있는 개인유전자분석 업체인 23andMe가 유전자검사로 햇빛재채기현상까지 예측해준다는 소식을 접했다 (23은 인간염색체 n수다. 이 업체는 키트에 타액을 채취하여 보내주면 혈통을 추적해 준다거나 각종 질병의 가능성 등을 분석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23andMe의 햇빛재채기현상 분석결과 예시 (출처: 23andMe)


23andMe 덕에 묻혀 있던 호기심이 조금 살아났다. 일단 이 현상이 유전적현상이라는 것에 대한 호기심 하나, 그러면 어떤 유전자가 관여하고 있을까 하는 둘. 23andMe의 논문을 찾아봤다.


출처: PLoS Genetics

2010년에 발표된 이 논문은 햇빛재채기현상만 다룬 것은 아니다.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미세한 유전자 차이 중 집단 내에서 1% 이상으로 유의미하게 나타나는 DNA 염기서열 하나의 변이를 SNP (단일염기변이 혹은 단일염기다형성, 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라고 하는데, 이 논문에서는 인류에 존재한다고 밝혀진 SNP 중 약 57만개를 분석하여, 이게 사람들 사이에서 보이는 어떠한 증상들, 예를 들면 햇빛재채기 등과 같은 현상과의 통계적인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다. 예를 들면 A라는 SNP 변이가 있는 사람들이 햇빛에 재채기를 할 가능성이 높다라는 식으로 밝혀내는 것이다.

방법론은 이렇다. 23andMe의 고객 약 10,000명을 대상으로 22개 표현형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다. 23andMe는 이미 이들의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설문조사를 이와 연결만 시키면 되는 것이다. 22개의 표현형은 햇빛재채기현상을 포함하여, 머리색, 머리카락모양, 아스파라거스를 먹은 후 소변에 특정 성분이 검출되는 현상, 주근깨 등으로 구성되며 설문을 통해 고객의 정보를 확보한다. 단지 설문으로. 참 쉽다. 표현형 한번 찾아보겠다고 열심히 애기장대를 키우며 뿌리길이, 잎면적, 엽록체함량, 씨발아 정도를 밤낮으로 측정했던 대학원 시절을 떠올리며 왠지 서글펐다. 빅데이터와 이를 지니고 있는 자의 위용.

어쨌든 논문으로 돌아와 이들이 찾아낸 햇빛재채기현상과 관련 있는 SNP는 두 개다. 하나는 rs10427255라는 녀석으로 특정 유전자 내에 있는 것은 아니고 ZEB2 (725kb 떨어짐)라는 유전자와 PABPCP2 (1.2MB 떨어짐)라는 유전자 사이에 위치한다. 나머지 하나는 rs11856995라는 녀석으로 역시 특정 유전자 내에 위치하지는 않고 비유전자부위에 위치하는데 가장 가까운 유전자는 560kb 떨어진 NR2F2다 (사실 몇 백 kb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SNP가 과연 그 유전자와 연관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없지는 않다만, 유전체의 3차원구조나 sRNA 등의 가능성을 정확히 분석하지 않는 이상 가장 가까이 위치한 유전자부터 살펴보는 것이 합리적 추론인 것은 맞다). 23andMe는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저 두 개의 SNP를 분석하여 고객들에게 당신은 햇빛을 보면 재채기를 할 것이다라는 예측을 제공한다.

이 유전자들은 어떤 녀석이길래 햇빛재채기현상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위의 세 유전자 중 PABPCP2는 기능이 없는 pseudogene이라고 밝혀졌고, 그래서 논문에서는 나머지 두 유전자에 주목한다. ZEB2의 경우 이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Mowat-Wilson 증후군이 나타난다고 한다. 처음 들어보는 증후군이지만 어쨌든 이는 간질을 수반한다고 한다. 간질은 신경계 질환이다. 햇빛재채기현상도 신경계와 관련이 있는 증상이라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므로 뭔가 의미가 있는 결과로 보인다는 논문의 해석이다. 그리고 NR2F2의 경우 이 유전자가 억제된 마우스에서 뇌의 청반 (the locus ceruleus)이라는 부위에 결함이 생긴다는 이전 연구결과가 있었고, 이 부위는 재채기와도 관련이 있다고 하니 이 또한 의미 있다는 논문의 해석이다. 아무렴 논문의 discussion 파트는 선행 연구결과들과 온갖 상상력을 종합하여 결과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여야 하므로 해석은 끼워맞추기식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팩트는 밝혀낸 두 SNP가 통계적으로 햇빛재채기현상과 유의미한 상관성이 있다는 것까지이지만, 어쨌든 팩트 넘어 추론으로 ZEB2와 NR2F2가 햇빛재채기현상의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열어두고 후속 연구로 밝혀내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다분히 귀납적이다. 빅데이터가 중요해지는 요즘이라면 귀납의 가치가 덩달아 올라가겠지만, 그래도 분자생물학이라면 연역적 접근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ZEB2NR2F2가 햇빛재채기현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 밝혀내야 할 것이며, 두 군데의 SNP가 정말 이 현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 밝혀내야 할 것이다. 상관이 아니라 인과.

철학자들로부터 관심을 받았던 현상이라니 흥미롭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 햇빛재채기현상은 고대에서부터 이미 언급된 현상이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저서 The Book of Problems에서 "Why does the heat of the sun provoke sneezing?"이라는 질문과 함께 햇빛이 코 내부의 땀을 유발할 것이며 이 수분을 제거하기 위해 재채기를 할 것이라는 가설까지 제시하였다 (철학이 과학이고 과학이 철학이었던 고대의 사유는 정말이지 접할 때마다 놀랍고 부럽다). 17세기에는 프란시스 베이컨이 선배의 가설을 뒤엎었는데, 눈을 감고 해를 보면 재채기가 나지 않는다는 증명을 통해서이다. 베이컨은 이 현상에서 눈이 주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위대한 선배의 가설을 한 번에 뒤집기는 그랬는지, 햇빛이 안구에 습기를 유발할 것이고 이 습기가 코로 흘러들어가 재채기를 유발할 것이라는 재미있지만 여전히 습기의 틀 안에서 가설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이런 느려보이는 프로세스 기반의 가설은 햇빛을 보자마자 재채기가 나온다는 사실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이후 1964년에 이르러 Henry Everett이라는 박사가 신경계와 관련 있을 것이라는 가설과 함께 이를 "The Photic Sneeze Effect"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이 현상의 공식적인 명칭은 photic sneeze reflex 혹은 Autosomal Dominant Compelling Helio-Ophthalmic Outburst Syndrome (ACHOO)이다. 아추!

이후 이 신경계와 관련 있을 아추증후군이 유전적일 것이라는 논문이 1984년 발표된다 (Peroutka SJ, Peroutka LA (1984) Autosomal dominant transmission of the “photic sneeze reflex”. N Engl J Med 310: 599–600). 상염색체에서 우성으로 유전된다는 결론이다. 그리고 앞서 살펴본 2010년 23andMe의 논문에서는 상염색체에서 어떤 부위가 역할을 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하는 수준으로 이르게 된 것이다.

아직 밝혀야 할 것이 많으나 적어도 어떠한 유전적인 요인이 햇빛재채기현상, 아추증후군을 일으킨다고 추정되니 이 또한 재미지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은 난 왜 안하다가 하게 된거지.


오늘의 설약: 햇빛재채기현상은 신경계와 관련 있으며,유전되는 현상으로 사람마다 다르다.


이면수, 아직도 재채기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