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4일 일요일

상추를 먹으면 정말 졸릴까?

그렇다. 세상에는 나를 졸립게 하는 수 많은 요인이 존재하지만, 상추도 이에 기여하고 있음을 사실로 봐도 좋다.

상추에는 락투카리움 (lactucarium)이라는 물질이 있는데 이 물질이 진정효과나 진통효과를 지니고 있다. 보통 우리가 먹는 상추 (Lactuca sativa)에도 존재하지만 야생상추인 Lactuca virosa에, 특히 줄기에 많다. 이런 락투카리움의 진정진통효과와 또 우유 같은 라텍스 물성이 아편의 그것과 유사하여 상추아편 (lettuce opium)으로 불리기도 한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출처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이 상추아편은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인류의 유구한 선사 및 역사와 인간의 호기심, 혹은 무엇이든 좋은 걸 가져오라고 했을 왕권 등으로 미루어 보면 오히려 사용되지 않았다고 하면 이상할 것 같긴 하다). 19세기 폴란드에서는 (아편보다 약하지만 부작용이 적다는 이유로) 아편대용으로서 연구되기도 했지만, 추출이 힘들다는 문제로 상용화가 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후 19세기 후반, 20세기에 들어 미국과 영국에서는 기침을 진정시키거나 불면증에 수면을 유도하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출처: Journal of Ethnopharmacology


Speaking of Poland, 락투카리움의 이런 진정효과를 다룬 논문을 찾다보니 위의 2006년 논문을 발견했고, 마침 저자들이 Polish Academy of Sciences 출신이었다. 이 논문은 재미있게도 락투카리움의 효과를 이부프로펜과 비교했다 (많이 익숙한 이부프로펜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소염진통제인 부루펜으로 대표되며, 타이레놀의 아세트아미노펜과 함께 2대 진통성분이다). 쥐에서 이부프로펜과 그 효과가 비슷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30 mg/kg 범위에서).


출처: Wikipedia


그럼 락투카리움이 어떤 놈인지 조금 더 살펴보자. 락투카리움은 특정 성분이라기 보다는 상추추출액을 통칭하는 용어다 (혼합물의 개념). 그 추출액 속에서 실제 진정효과를 나타내는 물질은 락투신 (lactucin), 락투코피크린 (lactucopicrin)이 대표적이다. 상추를 먹을 때 약간 쓴맛이 나게하는 물질들인데, "식물의 쓴맛"하면 알칼로이드계 물질들이 떠오르지만 이 녀석들은 알칼로이드가 아닌 테르펜계 (사실 terpene은 /털핀/이라고 읽는다만) 물질이다. 테르펜 중에서도 이소프렌 (isoprene /아이소프렌/이라고 읽는다) 단위가 세 개로 이루어진 sesquiterpene이며, 나아가 그림과 같이 락톤링을 가지고 있는 sesquiterpene lactone이다. 2015년 노벨생리의학상의 주인공인 개똥쑥 유래의 항말라리아 물질인 아르테미시닌 (artemisinin)도 sesquiterpene lactone 중 하나이며, 이렇듯 인체에서 여러 가지 유효 활성을 지니고 있는 물질군이다.


출처: International Journal of Molecular Sciences


위는 이런 물질군의 효과를 다룬 2013년 논문이다. 여러 효과들은 차치하고 이 논문의 앞 부분에 이렇게 시작하는 문단이 있다:

To humans, lettuce and chicory (Lactuca sativa and Chicorium intybus L.) represent the main dietary source of sesquiterpene lactones, on the basis of the levels of their global consumption.

즉, 우리에게 sesquiterpene lactone 물질들을 가장 많이 공급해주는 소스는 상추와 치커리라는 말이다. 이제 여기서 이런 의문이 생긴다. 왜 상추와 치커리에만 이런 물질들이 많을까? 

이 물음에 대한 쉬운 답은 이 물질을 만드는 유전자가 상추와 치커리에만 있어서, 혹은 유전자는 모든 식물에 다 있는데 이 두 녀석들에서만 잘 발현이 되어서 일 것이다. 이건 너무 분자생물학적인 대답이고, '진화적으로 왜때문에 이 녀석들만?'이 궁금하지만 아직 이쪽으로 많은 연구는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분자생물학적인 고찰로만 만족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역시 자료를 찾기가 만만치 않았다. 애기장대나 벼 같은 모델식물도 아닐 뿐더러 과학계에 큰 관심거리는 아니었기 때문일 터다. 락투카리움 생합성 경로조차 찾기가 쉽지 않다. 관련 논문 두 편을 발견했다.


출처: Phytochemistry

출처: Frontiers in Plant Science


두 편 중 위의 것은 2002년 영국 임페리얼콜리지에서, 아래 것은 2016년 이탈리아 농진청 같은 곳에서 발표한 논문이다. 2016년 논문은 치커리로 연구했지만, 최근 것이고 전사체 분석까지 동반하였기 때문에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서는 같은 치커리도 품종에 따라 sesquiterpenoid의 함량이 다른 원인을 규명하고 있다. 결론은 치커리 품종끼리는 유전자는 유사하나 유전자의 발현정도가 달라 함량이 다르다는 것이지만, 결론과 별개로 마침 이 논문에서 이 글의 흐름에 맞는 그림을 찾았다.


출처: Frontiers in Plant Science


시작이 되는 terpenoid backbone 생합성 경로는 모든 식물에서 나타난다. Farnesyl phosphate가 여러 효소에 의해 germacrene A 등으로 뻗어 가다가 costunolide가 된 후 이것이 최종적으로 락투카리움 성분들이 된다. 그림에서 가장 오른쪽에 Lc-like STLs이 락투신 종류의 sesquiterpene lactone들, 그 아래 Lp-like STLs가 락투코피크린 종류의 그것들이다. 아직까지는 costunolide를 이런 락투카리움으로 전환시키는 효소나 유전자가 밝혀지지 않은 듯하다. 그래도 그 전까지의 많은 효소와 유전자들이 표기가 되어 있다. GAS의 경우 germacrene A synthase 효소로 이를 암호화 하는 유전자들이 Ci_contig62597,  Ci_contig62598 등이 있는 것이다. GAO는 germacrene A oxidase, COS는 costunolide synthase이다. 앞서 언급했듯 이 논문의 결론은 이러한 유전자들 사이에 SNP 변이도 거의 없을 정도로 유전자 레벨에서는 유사하지만, 이 유전자들의 발현 정도가 달라서 락투카리움의 함량이 품종마다 다르다고 한다.


출처: Phytochemistry


(참고로 위의 2002년 논문에서는 Lactuca sativa에서 두 개의 GAS 유전자를 최초로 클로닝하였다. 대장균에 발현시켜 farnesyl diphosphate를 germacrene A로 말아주는 것까지 확인했다. 여기서는 이름을 LTC1LTC2라고 명명하였다.)

그럼 다른 식물에도 이런 유전자가 있는데 발현이 잘 되지 않아서 락투카리움 성분이 적은 것일까, 아니면 유전자 자체가 아예 없는 것일까 (유전자유무 vs 발현문제)? 이 정도되면 내가 논문을 써야할 것 같긴 하지만, COS만 타겟으로 해서 조금 더 찾아봤다. NCBI Nucleotide 검색에 costunolide synthase라고 검색하면 35개의 결과가 뜬다. 이중에서 진짜 COS로 추정되는 녀석들은 5개 정도다 (대략 1,500 bp 정도의 coding sequence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상추와 치커리 외에 보이는 개체는 아티초크라는 난생 처음들어보는 식물 (Cynara cardunculus), 피버퓨 (feverfew)라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식물 (Tanacetum parthenium), 한련초라는 들어 본 듯 처음 들어보는 식물 (Eclipta prostrata)이 있다. 흔히 아는 식물들이 잘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 적어도 이 효소유전자는 일반 식물에 흔히 존재하지는 않는 듯 하다. 이를 확실히 확인해 봐야겠다.  

NCBI에서 찾은 상추 COS (LsCOS)의 아미노산 서열은 다음과 같다.

MEPLTIVSLAVASFLLFAFWALSPKTSKNLPPGPPKLPIIGNIHQLKSPTPHRVLRNLAKKYGPIMHLQLGQVSTVVVSTPRLAREIMKTNDISFADRPTTTTSQIFFYKAQDIGWAPYGEYWRQMKKICTLELLSAKKVRSFSSIREEELRRISKVLESKAGTPVNFTEMTVEMVNNVICKATLGDSCKDQATLIEVLYDVLKTLSAFNLASYYPGLQFLNVILGKKAKWLKMQKQLDDILEDVLKEHRSKGRNKSDQEDLVDVLLRVKDTGGLDFTVTDEHVKAVVLDMLTAGTDTSSATLEWAMTELMRNPHMMKRAQEEVRSVVKGDTITETDLQSLHYLKLIVKETLRLHAPTPLLVPRECRQACNVDGYDIPAKTKILVNAWACGTDPDSWKDAESFIPERFENCPINYMGADFEFIPFGAGRRICPGLTFGLSMVEYPLANFLYHFDWKLPNGLKPHELDITEITGISTSLKHQLKIVPILKS

이걸 가지고 NCBI BLAST를 돌려봤다.


Tool: NCBI


역시 아티초크, 한련초 같은 녀석들이 뜬다. 상위권에 해바라기 (Helianthus annuus), 마침 아는 녀석도 하나 나왔다. 아래 쭈욱 보니 고추나 담배 같은 가짓과 식물들은 조금 보이지만 애기장대나 벼, 옥수수 같은 모델 식물들은 역시 보이지 않는다. 상추와 치커리 (치커리 서열도 NCBI에서 가져왔다)의 COS 아미노산 서열은 유사할까 궁금하여 ClustalW를 돌려보았다. 상당히 비슷함을 알 수 있다.


Tool: ClustalW


그럼 이제 락투카리움 생합성 유전자는 상추나 치커리 같은 일부 식물에만 존재한다고 결론 내릴 수 있을까? 아직 확신하기는 힘들다. 대표 모델식물인 애기장대에서 COS 유전자가 있는지 여부가 직접적인 증거가 되겠다. NCBI에서 COS의 DNA 서열을 가지고 와서 TAIR에서 애기장대 유전체와 비교해보고, 아울러 BLAST를 돌려봤다.


Tool: TAIR


이건 내가 넣은 DNA 서열이 애기장대 게놈 내 정확한 매치가 있는지 보여주는 것으로 당연히 no exact matches to the genome, 별 의미없는 시도였다 (종간에 서열이 똑같을리 없을 뿐더러 심지어 내가 넣은 서열은 gDNA도 아니고 cds였다;). 아래 BLAST 결과가 중요하겠다.


Tool: TAIR


BLAST 결과를 봐도 매치 score가 매우 낮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게 아무 식물에서나 발견되는 유전자는 아니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 즉, 졸음유발 물질인 락투카리움 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상추나 치커리 같은 일부 식물만 가지고 있다고 봐도 되겠다. 발현의 차이가 아니라 유전자 자체의 유무에서 기인하는 차이였던 것이다.

이것저것 길어졌지만 정리하면 이렇다.

  1. 상추에는 상추아편이라고 불리는 진정작용 물질인 락투카리움이 있다.
  2. 락투카리움 구성물질인 락투신, 락투코피크린은 테르펜계 물질이다.
  3. 상추와 더불어 치커리에도 락투카리움 물질들이 많다.
  4. 치커리 품종 간 락투카리움 함량차이는 유전자 자체의 차이가 아닌 발현의 차이에 기인한다.
  5. 하지만 보통 식물들은 락투카리움 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 자체가 없다.


오늘의 설약: 상추랑 치커리에는 유전적으로 락투카리움이라는 성분이 있어 정말 졸음을 유도한다.


간만에 여러 툴을 써봤고 상추에 대해 많이 배웠다. 난 고기는 깻잎에 싸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