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앞의 글에서 23andMe를 조금 살펴봤다. 이 회사는 미국의 각종 유전정보서비스 업체 중 가장 잘 나가고 있다. 구글 설립자 세르게이 브린의 전 부인인 Anne Wojcicki이 설립한 업체로 구글의 투자도 받았다.
미국은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존재하기에 이런 혈통추적 서비스가 TV에서 광고를 할 만큼 인기가 있다. 물론 주변에서 이 서비스를 직접 해봤다는 사람을 보기는 아직 힘들지만. 근데 한국인인 나도 궁금했다. 일단 내 성씨인 여양 진씨도 왠지 대륙에서 건너온 느낌이 물씬나고, 그렇다고 내가 족보 등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여러 정황을 살펴보면 정말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궁금했었다. 더군다나 이곳 미국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너희 한국인은 일제 식민지 때문에 일본인이랑 많이 섞이지 않았냐는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그래서 조금은 흥분해서 반론을 펼쳤던 -식민기간 중 세대를 여럿 거치지 않았고, 당시에도 한국인은 한국인끼리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라는-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경험에, 이를 유전적으로 밝혀보리라 하는 다짐. 거기에 직업이 직업인지라 바이오 분야의 신기술을 몸소 겪어보고 싶었던 마음도 컸고, 무엇보다 웹서핑 중 23andMe가 여름할인 중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충동적으로 질렀다.
질병예측까지 해주는 서비스는 160불 정도 하고, 혈통추적만 하면 99불이다. 이번 할인기간에는 30불을 싸게 해서 69불에 주문했다. 다만 키트를 받고 다시 보내야 하기 때문에 배송비 9.95불이 추가되어 총 78.95불에 내 유전자를 팔았다, 아니 샀다. 7월 29일에 주문했고, 8월 1일에 키트가 도착했다.
(봉지에 바이오하자드 표시 ㅋㅋ) |
시험관 같은 튜브에 침을 2 ml 정도 뱉는다 (생각했던 것보다 꽤나 뱉어야 했다). 침 자체에는 DNA가 없겠지만, 침 안에 구강상피세포 등이 포함되어 있을 테고 그 세포 안의 DNA를 분석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침을 많-이 뱉어야 세포가 충분히 모여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뚜껑을 닫으면 뚜껑 쪽에 있던 액체가 침과 섞이면서 밀봉된다. 아마 저 액체는 세포를 보존하는, 혹은 세포를 깨고 DNA를 보존하는 버퍼일 것이다. 키트를 다시 23andMe 분석기관으로 보내야 하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DNA가 파손되면 다 헛빵이다.
참고로 분석기관은 23andMe와 계약을 맺은 LapCorp로, Burlington, NC 27216으로 수신처가 기입되어 키드가 온다. 원래 일루미나의 genotyping chip을 이용하고 있었으나 규제 등 이슈가 있어 LapCorp와 손잡은 것으로 알고 있다만, 확실치 않다. 아무튼 이와 동시에 23andMe에 회원가입을 해서 튜브에 있는 바코드를 입력해야 등록이 완료된다. 앱으로 해도 되고 웹으로 해도 된다.
아무래도 유전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니 만큼 개인정보에 대한 terms가 아주 길게 제시된다. 다 읽기는 귀찮고 캡쳐는 해뒀다. 엄청 길다. 그리고 우체통에 넣으면 내가 할 일은 끝. 아니 23andMe에서 각종 건강정보에 대한 설문조사를 엄청 요구한다. 의무는 아니지만 얘네들은 설문조사로 표현형 실험을 대신하는 거다. 그리고 자기들의 분자마커 DB와 자꾸 매칭을 시켜나가려고 할 것이다. 영리한 생키들. 성실히 임하지 않았다.
8월 1일에 바로 보냈는데 도착은 8월 23일에 했다고 떴다. 같은 동부끼리 너무하네. 그리고 그날 바로 quality inspection을 해서 통과됐다고 나왔다. 그리고 DNA 추출이 들어간다고 떴다. 배송이야 그렇다쳐도 DNA 추출이 거의 3주나 걸린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하루면 끝나는 작업을 (LapCorp의 capa와 이 기간을 역산하면 23andMe의 하루 고객수와 연간 매출을 대충 구할 수 있겠다). 어쨌든 여전히 이해는 되지 않으나 9월 11일에 DNA 추출이 완료됐다고 떴다. 그리고 genotyping chip에서 DNA 분석이 들어갔다. 또 일주일. 9월 17일에 분석이 끝나고 quality review도 마쳤다고 뜨며, raw data 분석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9월 22일 드디어 최종 결과가 나왔다. 총 52일의 긴 여정이었다.
*출처: 내 유전자 (및 23andMe) |
일단 다행히도 한국인이 94.3%가 떴다. 그리고 일본이 3.6% (!), 중국이 1.2% 씩으로 미미하지만 섞여 있었다 (자세한 분석결과를 보면 유럽, 동남아, 아프리카 등은 0.0%로 나온다. 좀 의아한 것은 몽고도 0이네). 23andMe가 다른 업체들에 비해 아시아 DB도 잘 되어있다고는 한다. 94.3%면 상당히 높은 수치이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타민족이 섞여 있다는 생각에 마구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앞서 미국애들한테 일본이 섞였을리가 없다고 한껏 떠들어 놓은 상황인지라 더욱 그랬다. 얘네들은 분자마커를 뭘로 썼으며 그건 한국-중국-일본을 명확하게 분리할까? 일전에 암내의 유전학에서 봤듯이 한국과 일본은 SNP 변이까지 공유할 정도로 상당히 유사한 유전자들이 많아, 이걸 녀석들이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흠흠. 당장 23andMe의 분자마커 정보를 찾기가 귀찮고, 판다고 해서 구할 수나 있을지도 모르니 그냥 믿는 걸로 하자. 대신 대조군이 있으면 좋겠다. 마침 올해 초에 중앙일보에서 같은 서비스를 이용한 기자분이 계셔서 비교해봤다.
*출처: 심재우 기자님 유전자와 중앙일보 |
흐흐, 왠지 내가 이긴 것 같은 이 기분은.
*출처: 내 유전자 (및 23andMe) |
혈통구성뿐만 아니라 다른 각도로도 결과를 분석해준다. 몇 세대 위에 어떤 민족이 섞였는지도 보여주고, 각각 민족을 반영하는 마커가 염색체 상 어디에 위치하는지도 보여준다. 꽤나 재밌다는 점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얼마나 신빙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확실히 구체적인 숫자로 제공하니 왠지 그런 것만 같다. 이미 빠져들고 있어.
그리고 나아가 먼 인류의 조상도 추정해준다. 네안데르탈이 얼마나 섞여 있는지 등. 네안데르탈은 특히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분야이기에 재미있게 읽었다. 미국에 살면서 쌀쌀한 날씨에도 반팔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백인들을 보며, 저건 분명 네안데르탈의 피라고 늘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도 네안데르탈이 조금은 섞여 있으나 아주 미미한 수준이라고 한다. 아래처럼 드러나는 형질은 하나도 관련이 없다. 그래, 내 얼굴은 충분히 밋밋해.
*출처: 내 유전자 (및 23andMe) |
어쨌든 이것저것 재밌었다. 돈지랄 한 것 같긴 하지만 덕분에 글도 한 편 썼고, 색다른 재미를 느꼈으니 됐다.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유전정보나 오용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