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28일 금요일

23andMe로 내 혈통을 추적해봤다.

내 유전정보를 어떤 영리단체에 제공한다는 것은 매우 찝찝한 일이다. 것도 조국의 그것이 아닌 타국의 회사에. 더군다나 내 개인정보를 내 지갑을 열어 제공한다는 점 때문에 더욱 기분이 좋지 않다. 그래도, 궁금하다.

바로 앞의 글에서 23andMe를 조금 살펴봤다. 이 회사는 미국의 각종 유전정보서비스 업체 중 가장 잘 나가고 있다. 구글 설립자 세르게이 브린의 전 부인인 Anne Wojcicki이 설립한 업체로 구글의 투자도 받았다.

미국은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존재하기에 이런 혈통추적 서비스가 TV에서 광고를 할 만큼 인기가 있다. 물론 주변에서 이 서비스를 직접 해봤다는 사람을 보기는 아직 힘들지만. 근데 한국인인 나도 궁금했다. 일단 내 성씨인 여양 진씨도 왠지 대륙에서 건너온 느낌이 물씬나고, 그렇다고 내가 족보 등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여러 정황을 살펴보면 정말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궁금했었다. 더군다나 이곳 미국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너희 한국인은 일제 식민지 때문에 일본인이랑 많이 섞이지 않았냐는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그래서 조금은 흥분해서 반론을 펼쳤던 -식민기간 중 세대를 여럿 거치지 않았고, 당시에도 한국인은 한국인끼리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라는-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경험에, 이를 유전적으로 밝혀보리라 하는 다짐. 거기에 직업이 직업인지라 바이오 분야의 신기술을 몸소 겪어보고 싶었던 마음도 컸고, 무엇보다 웹서핑 중 23andMe가 여름할인 중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충동적으로 질렀다.

질병예측까지 해주는 서비스는 160불 정도 하고, 혈통추적만 하면 99불이다. 이번 할인기간에는 30불을 싸게 해서 69불에 주문했다. 다만 키트를 받고 다시 보내야 하기 때문에 배송비 9.95불이 추가되어 총 78.95불에 내 유전자를 팔았다, 아니 샀다. 7월 29일에 주문했고, 8월 1일에 키트가 도착했다.


(봉지에 바이오하자드 표시 ㅋㅋ)


시험관 같은 튜브에 침을 2 ml 정도 뱉는다 (생각했던 것보다 꽤나 뱉어야 했다). 침 자체에는 DNA가 없겠지만, 침 안에 구강상피세포 등이 포함되어 있을 테고 그 세포 안의 DNA를 분석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침을 많-이 뱉어야 세포가 충분히 모여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뚜껑을 닫으면 뚜껑 쪽에 있던 액체가 침과 섞이면서 밀봉된다. 아마 저 액체는 세포를 보존하는, 혹은 세포를 깨고 DNA를 보존하는 버퍼일 것이다. 키트를 다시 23andMe 분석기관으로 보내야 하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DNA가 파손되면 다 헛빵이다.




참고로 분석기관은 23andMe와 계약을 맺은 LapCorp로, Burlington, NC 27216으로 수신처가 기입되어 키드가 온다. 원래 일루미나의 genotyping chip을 이용하고 있었으나 규제 등 이슈가 있어 LapCorp와 손잡은 것으로 알고 있다만, 확실치 않다. 아무튼 이와 동시에 23andMe에 회원가입을 해서 튜브에 있는 바코드를 입력해야 등록이 완료된다. 앱으로 해도 되고 웹으로 해도 된다.

아무래도 유전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니 만큼 개인정보에 대한 terms가 아주 길게 제시된다. 다 읽기는 귀찮고 캡쳐는 해뒀다. 엄청 길다. 그리고 우체통에 넣으면 내가 할 일은 끝. 아니 23andMe에서 각종 건강정보에 대한 설문조사를 엄청 요구한다. 의무는 아니지만 얘네들은 설문조사로 표현형 실험을 대신하는 거다. 그리고 자기들의 분자마커 DB와 자꾸 매칭을 시켜나가려고 할 것이다. 영리한 생키들. 성실히 임하지 않았다.



8월 1일에 바로 보냈는데 도착은 8월 23일에 했다고 떴다. 같은 동부끼리 너무하네. 그리고 그날 바로 quality inspection을 해서 통과됐다고 나왔다. 그리고 DNA 추출이 들어간다고 떴다. 배송이야 그렇다쳐도 DNA 추출이 거의 3주나 걸린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하루면 끝나는 작업을 (LapCorp의 capa와 이 기간을 역산하면 23andMe의 하루 고객수와 연간 매출을 대충 구할 수 있겠다). 어쨌든 여전히 이해는 되지 않으나 9월 11일에 DNA 추출이 완료됐다고 떴다. 그리고 genotyping chip에서 DNA 분석이 들어갔다. 또 일주일. 9월 17일에 분석이 끝나고 quality review도 마쳤다고 뜨며, raw data 분석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9월 22일 드디어 최종 결과가 나왔다. 총 52일의 긴 여정이었다.

*출처: 내 유전자 (및 23andMe)

일단 다행히도 한국인이 94.3%가 떴다. 그리고 일본이 3.6% (!), 중국이 1.2% 씩으로 미미하지만 섞여 있었다 (자세한 분석결과를 보면 유럽, 동남아, 아프리카 등은 0.0%로 나온다. 좀 의아한 것은 몽고도 0이네). 23andMe가 다른 업체들에 비해 아시아 DB도 잘 되어있다고는 한다. 94.3%면 상당히 높은 수치이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타민족이 섞여 있다는 생각에 마구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앞서 미국애들한테 일본이 섞였을리가 없다고 한껏 떠들어 놓은 상황인지라 더욱 그랬다. 얘네들은 분자마커를 뭘로 썼으며 그건 한국-중국-일본을 명확하게 분리할까? 일전에 암내의 유전학에서 봤듯이 한국과 일본은 SNP 변이까지 공유할 정도로 상당히 유사한 유전자들이 많아, 이걸 녀석들이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흠흠. 당장 23andMe의 분자마커 정보를 찾기가 귀찮고, 판다고 해서 구할 수나 있을지도 모르니 그냥 믿는 걸로 하자. 대신 대조군이 있으면 좋겠다. 마침 올해 초에 중앙일보에서 같은 서비스를 이용한 기자분이 계셔서 비교해봤다.

*출처: 심재우 기자님 유전자와 중앙일보

흐흐, 왠지 내가 이긴 것 같은 이 기분은.

*출처: 내 유전자 (및 23andMe)

혈통구성뿐만 아니라 다른 각도로도 결과를 분석해준다. 몇 세대 위에 어떤 민족이 섞였는지도 보여주고, 각각 민족을 반영하는 마커가 염색체 상 어디에 위치하는지도 보여준다. 꽤나 재밌다는 점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얼마나 신빙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확실히 구체적인 숫자로 제공하니 왠지 그런 것만 같다. 이미 빠져들고 있어.

그리고 나아가 먼 인류의 조상도 추정해준다. 네안데르탈이 얼마나 섞여 있는지 등. 네안데르탈은 특히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분야이기에 재미있게 읽었다. 미국에 살면서 쌀쌀한 날씨에도 반팔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백인들을 보며, 저건 분명 네안데르탈의 피라고 늘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도 네안데르탈이 조금은 섞여 있으나 아주 미미한 수준이라고 한다. 아래처럼 드러나는 형질은 하나도 관련이 없다. 그래, 내 얼굴은 충분히 밋밋해.

*출처: 내 유전자 (및 23andMe)

어쨌든 이것저것 재밌었다. 돈지랄 한 것 같긴 하지만 덕분에 글도 한 편 썼고, 색다른 재미를 느꼈으니 됐다.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유전정보나 오용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2018년 3월 25일 일요일

햇빛만 보면 재채기? (ACHOO 증후군과 23andMe)

고교 시절 햇살 좋던 어느 날, 이면수라는 친구가 자기는 햇빛만 보면 재채기가 나온다고 했다. 나는 말도 안된다며 웃었고, 그날 이후로 거짓말 같이 실내에서 햇볕으로 나오는 순간 콧등이 간질거리며 같은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게 도대체 뭐지 라는 생각에 주변에 수소문해보니 보통 햇빛알레르기라고 부르고 있었다. 햇빛알레르기?

이상했다. 내가 알고 있는 알러지는 면역반응에 기반하는데, 빛 자체가 항원으로 작용한다고? 물리적인 에너지가 화학적인 항원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비타민 D라는 화학물질도 햇빛의 구성성분인 자외선에 의해 피부의 콜레스테롤이 화학변형을 일으켜 합성되는 것이니, 빛에너지가 어떤 화학적인 항원을 만들어 내는 것도 가능은 하겠다.)

과학적인 호기심이 딱 요정도까지였던 나는 궁금증을 잘 견디며 이후 20여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 조금 잘 나가고 있는 개인유전자분석 업체인 23andMe가 유전자검사로 햇빛재채기현상까지 예측해준다는 소식을 접했다 (23은 인간염색체 n수다. 이 업체는 키트에 타액을 채취하여 보내주면 혈통을 추적해 준다거나 각종 질병의 가능성 등을 분석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23andMe의 햇빛재채기현상 분석결과 예시 (출처: 23andMe)


23andMe 덕에 묻혀 있던 호기심이 조금 살아났다. 일단 이 현상이 유전적현상이라는 것에 대한 호기심 하나, 그러면 어떤 유전자가 관여하고 있을까 하는 둘. 23andMe의 논문을 찾아봤다.


출처: PLoS Genetics

2010년에 발표된 이 논문은 햇빛재채기현상만 다룬 것은 아니다.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미세한 유전자 차이 중 집단 내에서 1% 이상으로 유의미하게 나타나는 DNA 염기서열 하나의 변이를 SNP (단일염기변이 혹은 단일염기다형성, 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라고 하는데, 이 논문에서는 인류에 존재한다고 밝혀진 SNP 중 약 57만개를 분석하여, 이게 사람들 사이에서 보이는 어떠한 증상들, 예를 들면 햇빛재채기 등과 같은 현상과의 통계적인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다. 예를 들면 A라는 SNP 변이가 있는 사람들이 햇빛에 재채기를 할 가능성이 높다라는 식으로 밝혀내는 것이다.

방법론은 이렇다. 23andMe의 고객 약 10,000명을 대상으로 22개 표현형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다. 23andMe는 이미 이들의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설문조사를 이와 연결만 시키면 되는 것이다. 22개의 표현형은 햇빛재채기현상을 포함하여, 머리색, 머리카락모양, 아스파라거스를 먹은 후 소변에 특정 성분이 검출되는 현상, 주근깨 등으로 구성되며 설문을 통해 고객의 정보를 확보한다. 단지 설문으로. 참 쉽다. 표현형 한번 찾아보겠다고 열심히 애기장대를 키우며 뿌리길이, 잎면적, 엽록체함량, 씨발아 정도를 밤낮으로 측정했던 대학원 시절을 떠올리며 왠지 서글펐다. 빅데이터와 이를 지니고 있는 자의 위용.

어쨌든 논문으로 돌아와 이들이 찾아낸 햇빛재채기현상과 관련 있는 SNP는 두 개다. 하나는 rs10427255라는 녀석으로 특정 유전자 내에 있는 것은 아니고 ZEB2 (725kb 떨어짐)라는 유전자와 PABPCP2 (1.2MB 떨어짐)라는 유전자 사이에 위치한다. 나머지 하나는 rs11856995라는 녀석으로 역시 특정 유전자 내에 위치하지는 않고 비유전자부위에 위치하는데 가장 가까운 유전자는 560kb 떨어진 NR2F2다 (사실 몇 백 kb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SNP가 과연 그 유전자와 연관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없지는 않다만, 유전체의 3차원구조나 sRNA 등의 가능성을 정확히 분석하지 않는 이상 가장 가까이 위치한 유전자부터 살펴보는 것이 합리적 추론인 것은 맞다). 23andMe는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저 두 개의 SNP를 분석하여 고객들에게 당신은 햇빛을 보면 재채기를 할 것이다라는 예측을 제공한다.

이 유전자들은 어떤 녀석이길래 햇빛재채기현상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위의 세 유전자 중 PABPCP2는 기능이 없는 pseudogene이라고 밝혀졌고, 그래서 논문에서는 나머지 두 유전자에 주목한다. ZEB2의 경우 이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Mowat-Wilson 증후군이 나타난다고 한다. 처음 들어보는 증후군이지만 어쨌든 이는 간질을 수반한다고 한다. 간질은 신경계 질환이다. 햇빛재채기현상도 신경계와 관련이 있는 증상이라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므로 뭔가 의미가 있는 결과로 보인다는 논문의 해석이다. 그리고 NR2F2의 경우 이 유전자가 억제된 마우스에서 뇌의 청반 (the locus ceruleus)이라는 부위에 결함이 생긴다는 이전 연구결과가 있었고, 이 부위는 재채기와도 관련이 있다고 하니 이 또한 의미 있다는 논문의 해석이다. 아무렴 논문의 discussion 파트는 선행 연구결과들과 온갖 상상력을 종합하여 결과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여야 하므로 해석은 끼워맞추기식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팩트는 밝혀낸 두 SNP가 통계적으로 햇빛재채기현상과 유의미한 상관성이 있다는 것까지이지만, 어쨌든 팩트 넘어 추론으로 ZEB2와 NR2F2가 햇빛재채기현상의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열어두고 후속 연구로 밝혀내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다분히 귀납적이다. 빅데이터가 중요해지는 요즘이라면 귀납의 가치가 덩달아 올라가겠지만, 그래도 분자생물학이라면 연역적 접근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ZEB2NR2F2가 햇빛재채기현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 밝혀내야 할 것이며, 두 군데의 SNP가 정말 이 현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 밝혀내야 할 것이다. 상관이 아니라 인과.

철학자들로부터 관심을 받았던 현상이라니 흥미롭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 햇빛재채기현상은 고대에서부터 이미 언급된 현상이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저서 The Book of Problems에서 "Why does the heat of the sun provoke sneezing?"이라는 질문과 함께 햇빛이 코 내부의 땀을 유발할 것이며 이 수분을 제거하기 위해 재채기를 할 것이라는 가설까지 제시하였다 (철학이 과학이고 과학이 철학이었던 고대의 사유는 정말이지 접할 때마다 놀랍고 부럽다). 17세기에는 프란시스 베이컨이 선배의 가설을 뒤엎었는데, 눈을 감고 해를 보면 재채기가 나지 않는다는 증명을 통해서이다. 베이컨은 이 현상에서 눈이 주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위대한 선배의 가설을 한 번에 뒤집기는 그랬는지, 햇빛이 안구에 습기를 유발할 것이고 이 습기가 코로 흘러들어가 재채기를 유발할 것이라는 재미있지만 여전히 습기의 틀 안에서 가설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이런 느려보이는 프로세스 기반의 가설은 햇빛을 보자마자 재채기가 나온다는 사실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이후 1964년에 이르러 Henry Everett이라는 박사가 신경계와 관련 있을 것이라는 가설과 함께 이를 "The Photic Sneeze Effect"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이 현상의 공식적인 명칭은 photic sneeze reflex 혹은 Autosomal Dominant Compelling Helio-Ophthalmic Outburst Syndrome (ACHOO)이다. 아추!

이후 이 신경계와 관련 있을 아추증후군이 유전적일 것이라는 논문이 1984년 발표된다 (Peroutka SJ, Peroutka LA (1984) Autosomal dominant transmission of the “photic sneeze reflex”. N Engl J Med 310: 599–600). 상염색체에서 우성으로 유전된다는 결론이다. 그리고 앞서 살펴본 2010년 23andMe의 논문에서는 상염색체에서 어떤 부위가 역할을 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하는 수준으로 이르게 된 것이다.

아직 밝혀야 할 것이 많으나 적어도 어떠한 유전적인 요인이 햇빛재채기현상, 아추증후군을 일으킨다고 추정되니 이 또한 재미지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은 난 왜 안하다가 하게 된거지.


오늘의 설약: 햇빛재채기현상은 신경계와 관련 있으며,유전되는 현상으로 사람마다 다르다.


이면수, 아직도 재채기 하니?





2018년 2월 4일 일요일

상추를 먹으면 정말 졸릴까?

그렇다. 세상에는 나를 졸립게 하는 수 많은 요인이 존재하지만, 상추도 이에 기여하고 있음을 사실로 봐도 좋다.

상추에는 락투카리움 (lactucarium)이라는 물질이 있는데 이 물질이 진정효과나 진통효과를 지니고 있다. 보통 우리가 먹는 상추 (Lactuca sativa)에도 존재하지만 야생상추인 Lactuca virosa에, 특히 줄기에 많다. 이런 락투카리움의 진정진통효과와 또 우유 같은 라텍스 물성이 아편의 그것과 유사하여 상추아편 (lettuce opium)으로 불리기도 한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출처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이 상추아편은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인류의 유구한 선사 및 역사와 인간의 호기심, 혹은 무엇이든 좋은 걸 가져오라고 했을 왕권 등으로 미루어 보면 오히려 사용되지 않았다고 하면 이상할 것 같긴 하다). 19세기 폴란드에서는 (아편보다 약하지만 부작용이 적다는 이유로) 아편대용으로서 연구되기도 했지만, 추출이 힘들다는 문제로 상용화가 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후 19세기 후반, 20세기에 들어 미국과 영국에서는 기침을 진정시키거나 불면증에 수면을 유도하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출처: Journal of Ethnopharmacology


Speaking of Poland, 락투카리움의 이런 진정효과를 다룬 논문을 찾다보니 위의 2006년 논문을 발견했고, 마침 저자들이 Polish Academy of Sciences 출신이었다. 이 논문은 재미있게도 락투카리움의 효과를 이부프로펜과 비교했다 (많이 익숙한 이부프로펜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소염진통제인 부루펜으로 대표되며, 타이레놀의 아세트아미노펜과 함께 2대 진통성분이다). 쥐에서 이부프로펜과 그 효과가 비슷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30 mg/kg 범위에서).


출처: Wikipedia


그럼 락투카리움이 어떤 놈인지 조금 더 살펴보자. 락투카리움은 특정 성분이라기 보다는 상추추출액을 통칭하는 용어다 (혼합물의 개념). 그 추출액 속에서 실제 진정효과를 나타내는 물질은 락투신 (lactucin), 락투코피크린 (lactucopicrin)이 대표적이다. 상추를 먹을 때 약간 쓴맛이 나게하는 물질들인데, "식물의 쓴맛"하면 알칼로이드계 물질들이 떠오르지만 이 녀석들은 알칼로이드가 아닌 테르펜계 (사실 terpene은 /털핀/이라고 읽는다만) 물질이다. 테르펜 중에서도 이소프렌 (isoprene /아이소프렌/이라고 읽는다) 단위가 세 개로 이루어진 sesquiterpene이며, 나아가 그림과 같이 락톤링을 가지고 있는 sesquiterpene lactone이다. 2015년 노벨생리의학상의 주인공인 개똥쑥 유래의 항말라리아 물질인 아르테미시닌 (artemisinin)도 sesquiterpene lactone 중 하나이며, 이렇듯 인체에서 여러 가지 유효 활성을 지니고 있는 물질군이다.


출처: International Journal of Molecular Sciences


위는 이런 물질군의 효과를 다룬 2013년 논문이다. 여러 효과들은 차치하고 이 논문의 앞 부분에 이렇게 시작하는 문단이 있다:

To humans, lettuce and chicory (Lactuca sativa and Chicorium intybus L.) represent the main dietary source of sesquiterpene lactones, on the basis of the levels of their global consumption.

즉, 우리에게 sesquiterpene lactone 물질들을 가장 많이 공급해주는 소스는 상추와 치커리라는 말이다. 이제 여기서 이런 의문이 생긴다. 왜 상추와 치커리에만 이런 물질들이 많을까? 

이 물음에 대한 쉬운 답은 이 물질을 만드는 유전자가 상추와 치커리에만 있어서, 혹은 유전자는 모든 식물에 다 있는데 이 두 녀석들에서만 잘 발현이 되어서 일 것이다. 이건 너무 분자생물학적인 대답이고, '진화적으로 왜때문에 이 녀석들만?'이 궁금하지만 아직 이쪽으로 많은 연구는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분자생물학적인 고찰로만 만족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역시 자료를 찾기가 만만치 않았다. 애기장대나 벼 같은 모델식물도 아닐 뿐더러 과학계에 큰 관심거리는 아니었기 때문일 터다. 락투카리움 생합성 경로조차 찾기가 쉽지 않다. 관련 논문 두 편을 발견했다.


출처: Phytochemistry

출처: Frontiers in Plant Science


두 편 중 위의 것은 2002년 영국 임페리얼콜리지에서, 아래 것은 2016년 이탈리아 농진청 같은 곳에서 발표한 논문이다. 2016년 논문은 치커리로 연구했지만, 최근 것이고 전사체 분석까지 동반하였기 때문에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서는 같은 치커리도 품종에 따라 sesquiterpenoid의 함량이 다른 원인을 규명하고 있다. 결론은 치커리 품종끼리는 유전자는 유사하나 유전자의 발현정도가 달라 함량이 다르다는 것이지만, 결론과 별개로 마침 이 논문에서 이 글의 흐름에 맞는 그림을 찾았다.


출처: Frontiers in Plant Science


시작이 되는 terpenoid backbone 생합성 경로는 모든 식물에서 나타난다. Farnesyl phosphate가 여러 효소에 의해 germacrene A 등으로 뻗어 가다가 costunolide가 된 후 이것이 최종적으로 락투카리움 성분들이 된다. 그림에서 가장 오른쪽에 Lc-like STLs이 락투신 종류의 sesquiterpene lactone들, 그 아래 Lp-like STLs가 락투코피크린 종류의 그것들이다. 아직까지는 costunolide를 이런 락투카리움으로 전환시키는 효소나 유전자가 밝혀지지 않은 듯하다. 그래도 그 전까지의 많은 효소와 유전자들이 표기가 되어 있다. GAS의 경우 germacrene A synthase 효소로 이를 암호화 하는 유전자들이 Ci_contig62597,  Ci_contig62598 등이 있는 것이다. GAO는 germacrene A oxidase, COS는 costunolide synthase이다. 앞서 언급했듯 이 논문의 결론은 이러한 유전자들 사이에 SNP 변이도 거의 없을 정도로 유전자 레벨에서는 유사하지만, 이 유전자들의 발현 정도가 달라서 락투카리움의 함량이 품종마다 다르다고 한다.


출처: Phytochemistry


(참고로 위의 2002년 논문에서는 Lactuca sativa에서 두 개의 GAS 유전자를 최초로 클로닝하였다. 대장균에 발현시켜 farnesyl diphosphate를 germacrene A로 말아주는 것까지 확인했다. 여기서는 이름을 LTC1LTC2라고 명명하였다.)

그럼 다른 식물에도 이런 유전자가 있는데 발현이 잘 되지 않아서 락투카리움 성분이 적은 것일까, 아니면 유전자 자체가 아예 없는 것일까 (유전자유무 vs 발현문제)? 이 정도되면 내가 논문을 써야할 것 같긴 하지만, COS만 타겟으로 해서 조금 더 찾아봤다. NCBI Nucleotide 검색에 costunolide synthase라고 검색하면 35개의 결과가 뜬다. 이중에서 진짜 COS로 추정되는 녀석들은 5개 정도다 (대략 1,500 bp 정도의 coding sequence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상추와 치커리 외에 보이는 개체는 아티초크라는 난생 처음들어보는 식물 (Cynara cardunculus), 피버퓨 (feverfew)라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식물 (Tanacetum parthenium), 한련초라는 들어 본 듯 처음 들어보는 식물 (Eclipta prostrata)이 있다. 흔히 아는 식물들이 잘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 적어도 이 효소유전자는 일반 식물에 흔히 존재하지는 않는 듯 하다. 이를 확실히 확인해 봐야겠다.  

NCBI에서 찾은 상추 COS (LsCOS)의 아미노산 서열은 다음과 같다.

MEPLTIVSLAVASFLLFAFWALSPKTSKNLPPGPPKLPIIGNIHQLKSPTPHRVLRNLAKKYGPIMHLQLGQVSTVVVSTPRLAREIMKTNDISFADRPTTTTSQIFFYKAQDIGWAPYGEYWRQMKKICTLELLSAKKVRSFSSIREEELRRISKVLESKAGTPVNFTEMTVEMVNNVICKATLGDSCKDQATLIEVLYDVLKTLSAFNLASYYPGLQFLNVILGKKAKWLKMQKQLDDILEDVLKEHRSKGRNKSDQEDLVDVLLRVKDTGGLDFTVTDEHVKAVVLDMLTAGTDTSSATLEWAMTELMRNPHMMKRAQEEVRSVVKGDTITETDLQSLHYLKLIVKETLRLHAPTPLLVPRECRQACNVDGYDIPAKTKILVNAWACGTDPDSWKDAESFIPERFENCPINYMGADFEFIPFGAGRRICPGLTFGLSMVEYPLANFLYHFDWKLPNGLKPHELDITEITGISTSLKHQLKIVPILKS

이걸 가지고 NCBI BLAST를 돌려봤다.


Tool: NCBI


역시 아티초크, 한련초 같은 녀석들이 뜬다. 상위권에 해바라기 (Helianthus annuus), 마침 아는 녀석도 하나 나왔다. 아래 쭈욱 보니 고추나 담배 같은 가짓과 식물들은 조금 보이지만 애기장대나 벼, 옥수수 같은 모델 식물들은 역시 보이지 않는다. 상추와 치커리 (치커리 서열도 NCBI에서 가져왔다)의 COS 아미노산 서열은 유사할까 궁금하여 ClustalW를 돌려보았다. 상당히 비슷함을 알 수 있다.


Tool: ClustalW


그럼 이제 락투카리움 생합성 유전자는 상추나 치커리 같은 일부 식물에만 존재한다고 결론 내릴 수 있을까? 아직 확신하기는 힘들다. 대표 모델식물인 애기장대에서 COS 유전자가 있는지 여부가 직접적인 증거가 되겠다. NCBI에서 COS의 DNA 서열을 가지고 와서 TAIR에서 애기장대 유전체와 비교해보고, 아울러 BLAST를 돌려봤다.


Tool: TAIR


이건 내가 넣은 DNA 서열이 애기장대 게놈 내 정확한 매치가 있는지 보여주는 것으로 당연히 no exact matches to the genome, 별 의미없는 시도였다 (종간에 서열이 똑같을리 없을 뿐더러 심지어 내가 넣은 서열은 gDNA도 아니고 cds였다;). 아래 BLAST 결과가 중요하겠다.


Tool: TAIR


BLAST 결과를 봐도 매치 score가 매우 낮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게 아무 식물에서나 발견되는 유전자는 아니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 즉, 졸음유발 물질인 락투카리움 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상추나 치커리 같은 일부 식물만 가지고 있다고 봐도 되겠다. 발현의 차이가 아니라 유전자 자체의 유무에서 기인하는 차이였던 것이다.

이것저것 길어졌지만 정리하면 이렇다.

  1. 상추에는 상추아편이라고 불리는 진정작용 물질인 락투카리움이 있다.
  2. 락투카리움 구성물질인 락투신, 락투코피크린은 테르펜계 물질이다.
  3. 상추와 더불어 치커리에도 락투카리움 물질들이 많다.
  4. 치커리 품종 간 락투카리움 함량차이는 유전자 자체의 차이가 아닌 발현의 차이에 기인한다.
  5. 하지만 보통 식물들은 락투카리움 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 자체가 없다.


오늘의 설약: 상추랑 치커리에는 유전적으로 락투카리움이라는 성분이 있어 정말 졸음을 유도한다.


간만에 여러 툴을 써봤고 상추에 대해 많이 배웠다. 난 고기는 깻잎에 싸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