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술을 즐기기 시작한 것은 대학원 진학 후로 남들보다 조금은 늦은 나이였고, 늦게 배운 도둑질에 재미 붙여 술에 대한 이것저것을 찾아봤던 기억이 난다. 당시 교수님께서 주간미팅 시간에 one minute speech라고 하여 한 주 간 찾은 재밌있는 논문을 1분으로 요약하여 발표하는 코너를 만드셨다. 정말 토요일 아침 미팅을 죽어라 싫어했던 나는 이 스피치를 도대체 왜 하는지 매번 불만만 늘어놓았던 기억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적잖이 유익한 시간이었다. 논문보다는 매번 다른 류의 이야기, 예컨대 바로 앞의 글인 고기를 구우면 색깔이 변하는 이유 같은 걸 말하곤 했었는데, 술에 대한 관심이 소재를 제공하기도 했었다. 당시 내가 준비한 내용은 술의 대사과정, 왜 우리는 빨개지는가, 외국인들은 별로 안그런 것 같은데 등이었다. 이런 지식들은 이후에도 숱한 술자리에서 가벼운 화제거리로 종종 등장하곤 했으며 그때마다 덕을 보게 해주었기에, one minute speech에 대해 술에 빌어 감사의 마음을 되새긴다. 그때 찾아봤던 내용들을 상기하며 오늘은 연말을 맞아 술에 대한 썰을 풀어보고자 한다.
술은 알콜, 알콜 중에서도 에탄올 (C2H5OH)이다. 흔히 술 잘 먹는 사람들 보고 "알콜분해효소가 대단한데?"라고 말하곤 하는데 이건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살펴보자.
그림처럼 에탄올 (알콜)은 알콜분해효소 (alcohol dehydrogenase, ADH)에 의해 아세트알데하이드로 전환된다. 화학2에서 알데히드기 -CHO를 외운 기억이 있다면 바로 저 가운데 구조에서 -OH가 -CHO로 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광고에서도 알데히드 알데히드 하는 것이 저거다. 그리고 이는 아세트알데하이드분해효소 (ALDH)에 의해 초산이라고도 부르는 아세트산으로 전환되며, 다시 acetyl-CoA로 전환되어 구연산회로로 들어가서 최종적으로 이산화탄소 등을 부산물로 남긴다 (사실 말이 분해효소지 산화효소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자, 여기서 이제 우리가 술 마신 후 숙취를 느끼게 하는 물질을 규명해야 한다. 숙취라는 단어가 어디까지 포함하는지 모르겠으나, 여기서는 얼굴 빨개짐, 어지러움, 구토 등을 다 포함시키겠다. 이러한 고약한 숙취를 일으키는 물질은 알콜이 아니라 바로 아세트알데하이드다. 그러므로 "알콜분해효소가 대단하다면" 오히려 아세트알데하이드가 많이 쌓여 술을 마시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이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어서 아세트산으로 전환되는 사람, 즉 ALDH 활성이 높은 사람은 술이 강하겠다. 주당들을 모셔두고는 "알세트알데하이드분해효소가 대단한데?"라고 말하는 것이 이치에 맞으니 제대로 알고 있자.
(구분해야 할 것이, 알콜에 의해 기분 좋게 알딸딸 해지는 alcohol buzz 현상은 알콜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왜 한국인들은 유난히 얼굴이 잘 빨개질까? 다시 아세트알데하이드다. 아세트알데하이드 농도가 낮은 사람이 술도 잘 마시고 얼굴도 안빨개진다. 아세트알데하이드 농도가 낮으려면 앞서 말했듯이 이를 빨리 분해시킬 수도 있어야 하지만, 오히려 에탄올에서 아세트알데하이드로 전환이 더딘 사람도 이에 해당한다. 인풋활성이 낮거나 아웃풋활성이 높아야 한다는 말이다. 공교롭게도 한국을 포함한 일본, 중국인들은 인풋활성이 높고 아웃풋활성이 낮다. 즉, 알콜분해효소는 잘 작동하는데 아세트알데하이드분해효소는 그렇지 않아 숙취물질인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쌓이기에는 아주 최적이다. 이에 대해 고찰한 논문은 무려 1972년에, 또 무려 이곳 보스턴의 하버드메디컬스쿨 병원인 Boston Children's Hospital에서 Science에 발표되었다.
출처: Science
70년대의 이러한 표현형 연구로부터 현재의 분자유전학 연구로 밝힌 결과, 약 80%의 아시아인들 (태국, 라오스, 인도 제외)은 알콜분해효소의 변이형인 ADH1B를, 그리고 한국, 일본, 중국인들은 다른 변이형인 ADH1C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 두 타입 모두 알콜분해효능이 매우 뛰어나며 ADH1B의 경우 일반 알콜분해효소에 비해 40~100배 정도 높다고 하니 아세트알데하이드를 아주 잘 공급하겠다. 반면 아세트알데하이드 분해의 경우를 보면, 약 50%의 동북아시아인들은 미토콘드리아 ALDH2에 우성변이가 있어 활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다시 한번, 숙취에는 아주 최적인 유전형질이다.
반면 이 덕분에 알콜중독에 빠지는 일은 다른 민족에 비해 적다고 한다. 숙취를 느끼면 괴롭기 때문에 술을 잠깐이나마 멀리 하게 되지만, 숙취를 못 느끼는 민족들은 그 만큼 알콜과 더욱 가깝게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콜중독치료제인 disulfiram은 아세트알데히드분해효소를 오히려 억제하여 인위적으로 숙취를 유발시켜 술을 멀리하게끔 한다니 이 또한 재미있는 접근 방법이다.
술 얘기하면 생간, 어린간 등 간에 대한 말도 많이 나온다. 실제로 80%의 에탄올은 간에 존재하는 알콜분해효소에 의해 분해되고, 이는 다시 아세트알데하이드분해효소에 의해 분해되니 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2~10% 정도의 에탄올은 땀이나 소변, 날숨으로 배출되는데 음주측정기에 불 때 측정되는 알콜이 여기에서 기인한다).
참고로 혈중알콜농도가 0.05% 되면 음주운전에 걸리는데, 신체의 에탄올 분해는 20mg/100ml 즉 0.02% 이상의 알콜농도가 되면 포화된다고 한다. 이는 보통 성인이 맥주 한 병 정도 먹으면 도달하는 농도이다. 하지만 맥주 한 잔 했다고 음주에 걸리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보통 한 시간에 0.01~0.02%씩 분해가 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유성호 교수는 0.018%/hr이라고 말씀하셨다). 알콩중독자들은 0.025~0.035%/hr로 분해한다고 하니 하수구처럼 들어가겠네 ㅎㅎ
시중에 나온 숙취해소음료들은 어떤 기작일까 (사실 숙취해소음료도 위와 같은 유전적 이유 때문에 한국이나 일본시장이 잘 발달되어 있고, 이곳 미국에서는 잘 찾아보기 힘들다). 여기서부터는 확실한 사실은 아니다. 팩트체크 요. 알고 있는 정도만 읊어보면 보통 오르니틴이 많이 거론된다. 역시 숙취해소에는 간인데, 간에서 일어나는 아미노산 대사인 유레아 사이클의 구성물질이 오르니틴이고, 오르니틴을 첨가해주면 간기능이 좋아져서 알콜이나 아세트알데하이드 분해에 도움을 준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비타민이나 초콜렛도 많이 거론되는데, 조효소나 당은 에너지대사를 원활히 하기 때문에 나오는 말인 것 같다. 그리고 회식 때 나랑 일하는 동생녀석이 한미약품의 Fiss를 종종 챙겨주기도 했었는데, 성분에 콩재조합단백질이라고 적혀 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아세트알데하이드분해효소를 직접 넣어준 것이 아닐까 한다. 기분 탓인지 효소를 직접 먹을 때 효과가 가장 나았던 것 같다.
오늘의 설약: 한국인들은 알콜 분해는 잘 하는데 아세트알데하이드 분해를 잘 못해서 얼굴이 빨개지고 숙취가 많다.
술에 얽힌 과학이 이렇게 많으니 역시 인생에 많은 가르침을 주는 녀석이다. 고마워.
[참고문헌]
https://en.wikipedia.org/wiki/Alcohol_flush_reaction
https://en.wikipedia.org/wiki/Acetaldehyde_dehydrogenase
https://en.wikipedia.org/wiki/Alcohol_dehydrogenase
https://en.wikipedia.org/wiki/Disulfiram
http://tmedweb.tulane.edu/pharmwiki/doku.php/alcohol_alcohol_addi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