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5일 월요일

왜 술 마시면 나만 힘들지? (숙취의 유전학)

연말에는 내가 알콜인지 알콜이 난지 잘 모르며 살았던 것 같다. 물론 연중이라고 별반 달랐었냐마는. 지금이야 나와 있으니 술자리 횟수가 급락하여 나이에 걸맞는 신체를 되찾고 있으나, 한국에서의 오전은 늘 버티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술자리를 좋아하는 내가 문제였을 터).

사실 술을 즐기기 시작한 것은 대학원 진학 후로 남들보다 조금은 늦은 나이였고, 늦게 배운 도둑질에 재미 붙여 술에 대한 이것저것을 찾아봤던 기억이 난다. 당시 교수님께서 주간미팅 시간에 one minute speech라고 하여 한 주 간 찾은 재밌있는 논문을 1분으로 요약하여 발표하는 코너를 만드셨다. 정말 토요일 아침 미팅을 죽어라 싫어했던 나는 이 스피치를 도대체 왜 하는지 매번 불만만 늘어놓았던 기억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적잖이 유익한 시간이었다. 논문보다는 매번 다른 류의 이야기, 예컨대 바로 앞의 글인 고기를 구우면 색깔이 변하는 이유 같은 걸 말하곤 했었는데, 술에 대한 관심이 소재를 제공하기도 했었다. 당시 내가 준비한 내용은 술의 대사과정, 왜 우리는 빨개지는가, 외국인들은 별로 안그런 것 같은데 등이었다. 이런 지식들은 이후에도 숱한 술자리에서 가벼운 화제거리로 종종 등장하곤 했으며 그때마다 덕을 보게 해주었기에, one minute speech에 대해 술에 빌어 감사의 마음을 되새긴다. 그때 찾아봤던 내용들을 상기하며 오늘은 연말을 맞아 술에 대한 썰을 풀어보고자 한다.

술은 알콜, 알콜 중에서도 에탄올 (C2H5OH)이다. 흔히 술 잘 먹는 사람들 보고 "알콜분해효소가 대단한데?"라고 말하곤 하는데 이건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살펴보자.


그림처럼 에탄올 (알콜)알콜분해효소 (alcohol dehydrogenase, ADH)에 의해 아세트알데하이드로 전환된다. 화학2에서 알데히드기 -CHO를 외운 기억이 있다면 바로 저 가운데 구조에서 -OH가 -CHO로 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광고에서도 알데히드 알데히드 하는 것이 저거다. 그리고 이는 아세트알데하이드분해효소 (ALDH)에 의해 초산이라고도 부르는 아세트산으로 전환되며, 다시 acetyl-CoA로 전환되어 구연산회로로 들어가서 최종적으로 이산화탄소 등을 부산물로 남긴다 (사실 말이 분해효소지 산화효소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자, 여기서 이제 우리가 술 마신 후 숙취를 느끼게 하는 물질을 규명해야 한다. 숙취라는 단어가 어디까지 포함하는지 모르겠으나, 여기서는 얼굴 빨개짐, 어지러움, 구토 등을 다 포함시키겠다. 이러한 고약한 숙취를 일으키는 물질은 알콜이 아니라 바로 아세트알데하이드다. 그러므로 "알콜분해효소가 대단하다면" 오히려 아세트알데하이드가 많이 쌓여 술을 마시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이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어서 아세트산으로 전환되는 사람, 즉 ALDH 활성이 높은 사람은 술이 강하겠다. 주당들을 모셔두고는 "알세트알데하이드분해효소가 대단한데?"라고 말하는 것이 이치에 맞으니 제대로 알고 있자.

(구분해야 할 것이, 알콜에 의해 기분 좋게 알딸딸 해지는 alcohol buzz 현상은 알콜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왜 한국인들은 유난히 얼굴이 잘 빨개질까? 다시 아세트알데하이드다. 아세트알데하이드 농도가 낮은 사람이 술도 잘 마시고 얼굴도 안빨개진다. 아세트알데하이드 농도가 낮으려면 앞서 말했듯이 이를 빨리 분해시킬 수도 있어야 하지만, 오히려 에탄올에서 아세트알데하이드로 전환이 더딘 사람도 이에 해당한다. 인풋활성이 낮거나 아웃풋활성이 높아야 한다는 말이다. 공교롭게도 한국을 포함한 일본, 중국인들은 인풋활성이 높고 아웃풋활성이 낮다. 즉, 알콜분해효소는 잘 작동하는데 아세트알데하이드분해효소는 그렇지 않아 숙취물질인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쌓이기에는 아주 최적이다. 이에 대해 고찰한 논문은 무려 1972년에, 또 무려 이곳 보스턴의 하버드메디컬스쿨 병원인 Boston Children's Hospital에서 Science에 발표되었다.

 출처: Science

70년대의 이러한 표현형 연구로부터 현재의 분자유전학 연구로 밝힌 결과, 약 80%의 아시아인들 (태국, 라오스, 인도 제외)은 알콜분해효소의 변이형인 ADH1B를, 그리고 한국, 일본, 중국인들은 다른 변이형인 ADH1C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 두 타입 모두 알콜분해효능이 매우 뛰어나며 ADH1B의 경우 일반 알콜분해효소에 비해 40~100배 정도 높다고 하니 아세트알데하이드를 아주 잘 공급하겠다. 반면 아세트알데하이드 분해의 경우를 보면, 약 50%의 동북아시아인들은 미토콘드리아 ALDH2에 우성변이가 있어 활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다시 한번, 숙취에는 아주 최적인 유전형질이다.

반면 이 덕분에 알콜중독에 빠지는 일은 다른 민족에 비해 적다고 한다. 숙취를 느끼면 괴롭기 때문에 술을 잠깐이나마 멀리 하게 되지만, 숙취를 못 느끼는 민족들은 그 만큼 알콜과 더욱 가깝게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콜중독치료제인 disulfiram은 아세트알데히드분해효소를 오히려 억제하여 인위적으로 숙취를 유발시켜 술을 멀리하게끔 한다니 이 또한 재미있는 접근 방법이다.

술 얘기하면 생간, 어린간 등 에 대한 말도 많이 나온다. 실제로 80%의 에탄올은 간에 존재하는 알콜분해효소에 의해 분해되고, 이는 다시 아세트알데하이드분해효소에 의해 분해되니 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2~10% 정도의 에탄올은 땀이나 소변, 날숨으로 배출되는데 음주측정기에 불 때 측정되는 알콜이 여기에서 기인한다).

참고로 혈중알콜농도가 0.05% 되면 음주운전에 걸리는데, 신체의 에탄올 분해는 20mg/100ml 즉 0.02% 이상의 알콜농도가 되면 포화된다고 한다. 이는 보통 성인이 맥주 한 병 정도 먹으면 도달하는 농도이다. 하지만 맥주 한 잔 했다고 음주에 걸리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보통 한 시간에 0.01~0.02%씩 분해가 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유성호 교수는 0.018%/hr이라고 말씀하셨다). 알콩중독자들은 0.025~0.035%/hr로 분해한다고 하니 하수구처럼 들어가겠네 ㅎㅎ

시중에 나온 숙취해소음료들은 어떤 기작일까 (사실 숙취해소음료도 위와 같은 유전적 이유 때문에 한국이나 일본시장이 잘 발달되어 있고, 이곳 미국에서는 잘 찾아보기 힘들다). 여기서부터는 확실한 사실은 아니다. 팩트체크 요. 알고 있는 정도만 읊어보면 보통 오르니틴이 많이 거론된다. 역시 숙취해소에는 간인데, 간에서 일어나는 아미노산 대사인 유레아 사이클의 구성물질이 오르니틴이고, 오르니틴을 첨가해주면 간기능이 좋아져서 알콜이나 아세트알데하이드 분해에 도움을 준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비타민이나 초콜렛도 많이 거론되는데, 조효소나 당은 에너지대사를 원활히 하기 때문에 나오는 말인 것 같다. 그리고 회식 때 나랑 일하는 동생녀석이 한미약품의 Fiss를 종종 챙겨주기도 했었는데, 성분에 콩재조합단백질이라고 적혀 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아세트알데하이드분해효소를 직접 넣어준 것이 아닐까 한다. 기분 탓인지 효소를 직접 먹을 때 효과가 가장 나았던 것 같다.


오늘의 설약: 한국인들은 알콜 분해는 잘 하는데 아세트알데하이드 분해를 잘 못해서 얼굴이 빨개지고 숙취가 많다.


술에 얽힌 과학이 이렇게 많으니 역시 인생에 많은 가르침을 주는 녀석이다. 고마워.




[참고문헌]
https://en.wikipedia.org/wiki/Alcohol_flush_reaction
https://en.wikipedia.org/wiki/Acetaldehyde_dehydrogenase
https://en.wikipedia.org/wiki/Alcohol_dehydrogenase
https://en.wikipedia.org/wiki/Disulfiram
http://tmedweb.tulane.edu/pharmwiki/doku.php/alcohol_alcohol_addiction



2017년 12월 3일 일요일

왜 고기는 구우면 갈색으로, 새우는 빨간색으로 변할까? (구움에 대한 고찰)

고딩의 눈에 비친 생물2 선생님은 세상의 모든 현상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척척박사였다.

평소에 궁금했던 것들 모두 물어보라는 자신감을 비친 선생님께 나는 왜 티비를 통해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 띠 같은 것이 깜빡이면서 나타나는지를 질문했었고, 즉석에서 주파수와 인간의 뇌가 어떤 장면을 인식하는 시간으로 답해주실 만큼 해박하신 분이었다. 사실 대학이나 대학원 때 교수님들도 잘 모르시는 내용을 이미 고등학교 때 그분을 통해 배운 것도 많았는데, 광합성 명반응의 순환적광인산화 (Photosystem I)과 비순환적광인산화 (Photosystem II)가 왜때문에 나누어져 있는지, 언제 어떤 놈이 돌아가는지에 대한 그것이 대표적이다.

출처: 내 텍스트생물2

위는 아직도 종종 찾아보는 고등학교 텍스트생물2에서 발췌한 것이다. 교과서 대신 이 책으로 진도에 맞춰서 필기를 했었다. 고1, 고2 때 생물에 대해 배운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고3 때 정말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다. 아무튼 아랫 부분의 필기가 바로 위 광인산화 질문에 대한 대답인데, 학부 때든 대학원 때든 이에 대해 알고 계신 교수님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주말에 집에서 고기를 굽다보니 문득 이 선생님이 떠올랐다. 이분이 알려주신 기억나는 상식 중 하나가 고기를 구우면 갈색으로 변하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답부터 말하면 고기 속 미오글로빈의 철이온이 산화가 되어 색깔이 변하는 것이다.

미오글로빈은 헤모글로빈처럼 헴 (heme) 단백질로 구성되어 산소를 보관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헤모글로빈은 적혈구에서, 미오글로빈은 근육세포에서 (즉, 고기에는 미오글로빈이 많다) 역할을 한다는 장소의 차이점과, 헤모글로빈은 헴그룹이 네 개로 이루어진 tetramer인데 미오글로빈은 모노머라는 구조의 차이점이 있다.


 출처: https://www.buzzle.com/ (좌), http://slideplayer.com/slide/4462886/ (우)


위의 그림처럼 헴단백질 가운데는 철이온이 자리잡고 있다. 철은 산화환원이 잘 되어서 산소를 붙였다 뗐다 하는데 최적화된 이온이다. 미오글로빈은 바로 이 철이온의 산소와 결합정도, 즉 산화정도에 따라서 색깔이 변하는 것이다.


출처: https://www.slideshare.net/johnncoupland/38-mb-lecturefoodchem 


위에서 보이듯 철의 산화상태와 라이간드 (산소)와 결합정도에 따라 미오글로빈 구조가 변해 빛을 반사하는 성질도 바뀌게 되어 색깔이 달라진다. 굽기 전의 고기는 oxymyoglobin을 가지고 있어 붉은색을 띠는 것이고, 굽게 되면 산화에 의해 metmyoglobin으로 변하여 갈색을 띠게 되는 것이다.

고등학교 이후 저 상식을 기억하고 살아오고 있었다. 그러다 새우구이를 조우했을 때 이 상식이 통하지 않음을 발견하고 잔잔한 당황과 함께 그 원인을 찾아본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새우나 게 같은 놈들은 왜 반대일까?

이놈들의 붉은색 물질은 미오글로빈이 아니다. 그러니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완전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새우나 게는 껍질에 아스타잔틴이라는 물질을 가지고 있다. 원래 아스타잔틴은 푸른 계열의 빛파장을 흡수하고, 그래서 붉은 계열로 보이게 하는 색소이다 (귤이나 토마토의 색도 일부 아스타잔틴이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새우에서 아스타잔틴은 crustacyanin이라는 단백질과 결합된 상태로 존재한다. 이 단백질은 아스탄잔틱을 꽉 잡고 있어 이 색소의 구조를 변화시키고 (평평하게), 이 구조변화에 의해 흡광성질도 달라진다. 그래서 싱싱한 새우는 푸르스름한 색을 띠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열이 가해지면 이 crustacyanin이라는 단백질은 와해 (denaturation)가 되고 아스타잔틴은 비로소 자유가 되어 제 구조를 되찾아 붉은 계열을 띠게 되는 것이다. 재미가 있는 구이의 미학이다.


굽다.

불과 연소라는 것은 적잖은 물리화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깨닫는다. 물리적으로 열에너지를 전달하는, 그리고 화학적으로는 산소를 어디에 갖다 붙이는 그런 의미를 지닌 현상이다. 전자에 의해 단백질 와해가 일어나서 아스타잔틴을 해방시켜 빨간색을 띠며, 후자에 의해 미오글로빈의 철이온이 산화되어 갈색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물리와 화학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