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연세대 최강열 교수팀의 연구결과가 Journal of Investigative Dermatology에 발표되었다. "모낭을 재생시키는 탈모치료 물질 개발"이라는 타이틀로 각종 언론에 보도되기도 하였다.
일단 요즘 많은 과학인들이 지적하고 있지만 제목이 너무 앞서나간 건 사실이다. 아직 랩수준의 결과 (마우스와 인간모유두세포 in vivo 결과까지 보이긴 했으나)이고 임상 등 최종 상업화가 되려면 몇 년은 있어야 할 테다. 뭐 이건 교수 측에서 원했든 그러지 않았든 주목을 끌어야 하는 게 기사의 숙명이니 그려려니 한다. 그리고 '개발'이라는 단어가 꼭 상업화 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니 관점에 따라 허위보도는 아닐 듯 하다.
본론으로 가서 연구결과의 중심에는 Wnt signaling (윈트라고 읽는다)이 있다. 초파리의 wingless 표현형으로 노벨상까지 안겨준, 배아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매우 유명한 유전자이자 신호전달경로이다 (최근 식물에도 상동유전자와 신호전달과정이 존재한다고 밝혀지고 있으며 주로 스트레스 반응기작에 관여한다고 한다. 식물의 2만여개 유전자 중 스트레스에 관여하지 않는 녀석이 얼마나 될까만은). Wnt 신호전달도 GPCR처럼 세포막에 있는 수용체에 라이간드가 붙음으로써 시작되는데, Wnt 단백질이 외부자극에 의해 직접 라이간드로 역할을 한다. Canonical, non-canonical 경로가 있으나 어쨌든 최종적으로는 핵 속의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즉, 세포외부의 자극 → 세포막 → 세포질 → 핵 → 유전자 발현 조절이라는 신호전달경로의 정석을 Wnt 신호전달도 따르고 있다.
이번 연구결과에 의하면 Wnt 신호전달이 모낭에서 모발형성에 중요하다고 한다. 또한 대머리가 진행되고 있는 세포에서는 Wnt 신호전달이 억제되어 있는데, 이 억제에 관여하고 있는 단백질이 CXXC5이다. 억제를 풀어주기 위해 PTD-DBM이라는 펩타이드를 처리하면 CXXC5가 제 역할을 못하고 Wnt 신호전달이 다시 활성화 되어 세포재생이 일어나 모발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앞서 미디어들이 보도한 탈모치료 물질이라는 것이 바로 이 펩타이드이다. 참고로 PTD는 protein transduction domain의 약자로 치료용 펩타이드가 세포 내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도메인이며, DBM은 Dvl-binding motif의 약자로 Wnt 신호전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Dvl (Dishevelled, 디셰벌드)라는 단백질과 결합하는 부위이다. CXXC5는 바로 이 Dvl과 붙어 제 역할을 못하게 하여 Wnt 신호전달을 막는데, PTD-DBM은 CXXC5가 Dvl과 못 붙게, 즉 Wnt 신호전달을 억제하지 못하게 하는 기작이다.
최강열 교수팀은 CXXC5 분야의 선구자이다. 이 단백질의 발견으로 2015년 Nature에 논문을 게재했다. 그리고 작년에는 EMBO Molecular Medicine에 골다공증과 뼈재생 관련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잠깐 이 2016년 논문의 대표그림을 보자.
(출처: EMBO Molecular Medicine)
모발재생과 완전 동일한 접근이다. 다만 이 세포는 뼈조직의 그것이라는 점, 그리고 마지막에 핵 안에서 발현되는 유전자가 뼈 관련 유전자라는 점만 다르다. 뼈조직 재생을 위해 CXXC5를 억제하는 약물을 투여하는 점도 같다. 다만 여기서는 DBM과 같은 펩타이드가 아니라 KY-02327과 같은 small molecules를 이용했다. 약물로서 펩타이드와 small molecule의 차이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루겠지만 현재까지 대부분의 블록버스터 약들은 small molecules라는 정도만 알고 있으면 되겠다.
그러면 이번 모발논문에서 언급된 PTD-DBM은 뼈에서는 역할을 못하느냐 하면 그건 아닐 것이다. 장소만 다를 뿐이지 사용하는 단백질들은 모두 동일하다. 모발에서 Wnt를 억제하는 놈은 뼈에서도 Wnt를 억제하여 자칫하면 모발약이 뼈재생을 촉진시킬 수도 있다. 상업화까지의 적지 않은 해결과제가 있겠지만, 논문을 보며 처음으로 드는 생각은 바로 이 부작용 이슈였다. 국소부위 치료, 그리고 여타 많은 최첨단 drug delivery 기술들이 있으므로 임상에서 잘 해결해 나가길 바란다.
여담으로, 여기까지 보면 CXXC5가 "나쁜 놈" 같다. 이런 negative regulator들은 항상 뭔가 억울할 듯하다. 위 그림을 다시보자. CXXC5도 Wnt 신호전달에 의해 발현되는 놈이다. 음성피드백. 자기를 낳아준 부모에게 자기를 더 못낳게 하도록 방해하는 녀석이다. 또 나쁜 놈 같네; 그런데 사실 negative regulator들은 생명체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보통 빠른 반응을 요구하는 신호전달과정은 대부분 negative regulation이 해제되는 기작을 통한다. 신호가 왔을 때 처음부터 만들어 내는 것 보다, 다 만들어 놓고 허가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관리자가 없어지면 바로 작업에 들어가는 것이 훨씬 빠를 것이다. 또한 어떤 신호가 왔을 때 너무 과도하게 반응하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과유불급. 이런 역할들이 없다면 브라질과 왁스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찾는 단어가 될 지도 모르며, 혹은 많은 이들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어야 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인간은 우리 몸에 필요 없는 유전자나 단백질은 최소화 하도록 진화해 왔을 것이다. 하나하나 기능에 감사하며 진리를 탐구해야 한다.
오늘의 설약: 모발형성 신호전달을 억제하는 놈을 억제하면 모발재생의 길이 열릴 것이다.
또 재미질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