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월요일('20년 4월 20일) 오후 갑자기 Economics 교수님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멜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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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730: STOP WHAT YOU ARE DOING AND LOOK
I strongly encourage you to look right now at the front page of the online Wall Street Journal. Something unprecedented in history is happening this afternoon. The price of a barrel of oil is NEGATIVE.
The headline on the front page says it all "Oil Costs Less Than Zero Now, But More Than $30 This Fall."
We can talk more about this tonight (Monday at 6:30 pm) during our optional class.
Prof Jay 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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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멈추고 기사를 봤더니 교수님이 왜 저렇게까지 흥분하시며 읽기를 권유하시는 지 알 수 있었다. 사상 최초로 WTI 유가가 음의 값을 기록한 것이었다. 이유를 살펴보자.
먼저 오늘자 WTI 그래프다.
움푹 들어간 곳이 보인다. 4월 20일이다. 가격은 마이너스 $40 정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급반등. 사실 급반등이라기 보다는 4월 19일까지의 추세가 이어지는 듯 하다.
일단 국제유가는 '16년 $30 저점을 찍고, 최근 몇 년 사이 $50에서 $70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셰일로 인해 세계 최대 석유 생산국이자 수출국이 되어버린 미국의 힘이다. 셰일오일은 원가가 $40~50 정도로 추정되는데, 셰일오일 추출용 시추기(rig)가 미국에 600개 이상 존재한다. 그래서 손익분기를 조금 넘는 수준인 $60 이상으로 유가가 올라가면 가동 시추기가 많아져서 공급과잉이 벌어지고 유가는 다시 떨어진다. 너무 떨어지면 셰일 공급량이 줄어 다시 가격이 올라온다. 즉, 저 선에서 균형이 맞춰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COVID-19 사태로 항공, 선박, 일반 교통, 산업에서의 수요가 급감함에 따라 위 그래프처럼 2월 말부터 유가가 하락하기 시작했고, 사우디와 러시아의 감산합의 실패가 이 추세를 더욱 조장했다(물론 지금 미국개입으로 감산합의가 가시화 되고 있지만 모를 일이다).
그래도 그렇지 마이너스 유가라니. 돈을 주고 판다고? 어찌된 일일까. 지금부터 교수님의 설명이다.
가장 먼저 교수님께서 보여주신 사진이다. Cushing. 난 저 시설물 이름인 줄 알았다. 실은 오클라호마에 있는 도시였다. 그리고 그림의 시설물은 바로 기름 저장설비이고, 미국 석유의 대부분은 이 Cushing에 저장된다고 한다. 왜 여기냐? 사람이 별로 없어서라는 설명. 전쟁 등에 석유 저장소가 타격 받으면 인명 피해가 엄청날 우려에서 인적이 드문 곳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오클라호마는 텍사스만큼은 아니지만 석유의 주이기도 하다.
그런데 저 도시가 이번 유가랑 무슨 상관인가. 다음으로 보여주신 그림이다.
미국 전역의 석유 파이프라인이다. 석유 산지인 휴스턴으로부터 전국으로 배송된다. Cushing은 지도에서 Oklahoma City 근처에 있다. 즉, 대부분의 파이프라인이 Cushing을 거쳐간다. 참고로 서부는 자체 파이프라인만 조금 보일 뿐이다. 높은 환경규제 기준으로 인한 비싼 정제원가와 함께, 서부의 기름값이 비싼 이유다.
Cushing을 거치는 파이프라인은 캐나다 국경까지 뻗는다. 저기서 Cushing까지 석유가 꿀렁꿀렁 움직이는데는 1주일 반 정도 걸린다고 한다(시속 7~10 마일). 즉, 길고 오래 걸린다.
COVID-19로 인해 석유수요가 급감하자 저장소의 기름은 차오르게 되고, 결국 Cushing 저장소는 포화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생산을 중단하면 되지 않겠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문제는 저 파이프라인이다. 말단에서 오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는 1주일 반 전에 생산해서 배송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중간에 파이프라인 셧다운이 불가한 상황이다. 즉, 석유는 계속 흐르고 있고, Cushing 저장소들은 이를 감당해내야 하기 때문에 이제는 아주 싸게라도 팔아 치워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원래 지금쯤이 석유생산을 약간 중단하는 시기라고 한다. 여름 휴가철 수요 폭등 전에 정제소에서 미리 휴가를 몇 주 정도 쓰는 것이 관례라고 한다. 하지만 올해는 여름철 수요가 미진할테고 그래서 오히려 휴가를 미리 쓰지 못해서 생산은 지속적으로 가동되는 역설적인 상황까지 겹쳐 공급초과가 더욱 두드러진다.
정리해보면 지금은 파이프라인 유지를 위해서 최소한의 공급은 지속되고 있고, 수요는 아주 급감한 상황이다. 이를 수요-공급 곡선으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교수님께서는 지금 D 지점에 와있기 때문에 유가가 마이너스라는 설명이다. 아무리 그래도 돈을 주고 판다는 것이 조금 의아하다.
찾아보니 마침 4월 20일이 5월 선물거래 마감 하루 전이었다. 선물거래는 만기일이 지나면 실물을 인수해야 하는데, 지금은 인도 받아도 저장할 곳이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투자자들이 6월물 계약으로 갈아타는 'rollover'를 선택했고, 5월물을 팔아치우다 보니 당일만 특이하게 마이너스를 잠깐 보인 것이었다.
비즈조선의 표현을 빌려온다(원문 링크).
"...근월 인도분 선물가격보다 그 이후 인도분 선물가격이 비싼 현상인 ‘콘탱고(contango)’에서는 롤오버를 하면 마치 원유가격이 오르는 것 같은 착시현상이 일어난다. 재고가 넘쳐나고 원유저장 시설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제히 5월물을 팔고 6월물을 사들이자 비정상적으로 가격이 왜곡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먼저 봤던 유가 그래프를 보면 다음날 바로 $20 가까이 올라왔으니 이것이 설명된다. 그래도 수요-공급에 의한 가격 하락은 분명하고, 저장소와 파이프라인에 대해서도 배우게 되어 재미있었다.
됐고 그래서 기름값은 얼마나 떨어지는데?
미국 기름값은 tax (federal/state), refinery cost, transportation cost로 이뤄진다. 그래서 아무리 떨어져도 갤런당 $0.8 이하로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교수님의 설명이다. 지금 환율을 1,200원으로 치고 1갤런이 3.8리터 정도이니 리터당 250원 정도가 된다. 유가가 $50~70 일 때 우리 동네는 갤런당 $2.7 정도 했으니 리터당 850원 정도였다. 외각으로 가면 더 쌌고. 미국이 싸긴 싸다. 동부만 보면 뉴저지는 refinery가 가까워서 싸고, 버몬트나 메인은 멀어서 비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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