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3일 일요일

왜 고기는 구우면 갈색으로, 새우는 빨간색으로 변할까? (구움에 대한 고찰)

고딩의 눈에 비친 생물2 선생님은 세상의 모든 현상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척척박사였다.

평소에 궁금했던 것들 모두 물어보라는 자신감을 비친 선생님께 나는 왜 티비를 통해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 띠 같은 것이 깜빡이면서 나타나는지를 질문했었고, 즉석에서 주파수와 인간의 뇌가 어떤 장면을 인식하는 시간으로 답해주실 만큼 해박하신 분이었다. 사실 대학이나 대학원 때 교수님들도 잘 모르시는 내용을 이미 고등학교 때 그분을 통해 배운 것도 많았는데, 광합성 명반응의 순환적광인산화 (Photosystem I)과 비순환적광인산화 (Photosystem II)가 왜때문에 나누어져 있는지, 언제 어떤 놈이 돌아가는지에 대한 그것이 대표적이다.

출처: 내 텍스트생물2

위는 아직도 종종 찾아보는 고등학교 텍스트생물2에서 발췌한 것이다. 교과서 대신 이 책으로 진도에 맞춰서 필기를 했었다. 고1, 고2 때 생물에 대해 배운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고3 때 정말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다. 아무튼 아랫 부분의 필기가 바로 위 광인산화 질문에 대한 대답인데, 학부 때든 대학원 때든 이에 대해 알고 계신 교수님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주말에 집에서 고기를 굽다보니 문득 이 선생님이 떠올랐다. 이분이 알려주신 기억나는 상식 중 하나가 고기를 구우면 갈색으로 변하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답부터 말하면 고기 속 미오글로빈의 철이온이 산화가 되어 색깔이 변하는 것이다.

미오글로빈은 헤모글로빈처럼 헴 (heme) 단백질로 구성되어 산소를 보관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헤모글로빈은 적혈구에서, 미오글로빈은 근육세포에서 (즉, 고기에는 미오글로빈이 많다) 역할을 한다는 장소의 차이점과, 헤모글로빈은 헴그룹이 네 개로 이루어진 tetramer인데 미오글로빈은 모노머라는 구조의 차이점이 있다.


 출처: https://www.buzzle.com/ (좌), http://slideplayer.com/slide/4462886/ (우)


위의 그림처럼 헴단백질 가운데는 철이온이 자리잡고 있다. 철은 산화환원이 잘 되어서 산소를 붙였다 뗐다 하는데 최적화된 이온이다. 미오글로빈은 바로 이 철이온의 산소와 결합정도, 즉 산화정도에 따라서 색깔이 변하는 것이다.


출처: https://www.slideshare.net/johnncoupland/38-mb-lecturefoodchem 


위에서 보이듯 철의 산화상태와 라이간드 (산소)와 결합정도에 따라 미오글로빈 구조가 변해 빛을 반사하는 성질도 바뀌게 되어 색깔이 달라진다. 굽기 전의 고기는 oxymyoglobin을 가지고 있어 붉은색을 띠는 것이고, 굽게 되면 산화에 의해 metmyoglobin으로 변하여 갈색을 띠게 되는 것이다.

고등학교 이후 저 상식을 기억하고 살아오고 있었다. 그러다 새우구이를 조우했을 때 이 상식이 통하지 않음을 발견하고 잔잔한 당황과 함께 그 원인을 찾아본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새우나 게 같은 놈들은 왜 반대일까?

이놈들의 붉은색 물질은 미오글로빈이 아니다. 그러니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완전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새우나 게는 껍질에 아스타잔틴이라는 물질을 가지고 있다. 원래 아스타잔틴은 푸른 계열의 빛파장을 흡수하고, 그래서 붉은 계열로 보이게 하는 색소이다 (귤이나 토마토의 색도 일부 아스타잔틴이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새우에서 아스타잔틴은 crustacyanin이라는 단백질과 결합된 상태로 존재한다. 이 단백질은 아스탄잔틱을 꽉 잡고 있어 이 색소의 구조를 변화시키고 (평평하게), 이 구조변화에 의해 흡광성질도 달라진다. 그래서 싱싱한 새우는 푸르스름한 색을 띠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열이 가해지면 이 crustacyanin이라는 단백질은 와해 (denaturation)가 되고 아스타잔틴은 비로소 자유가 되어 제 구조를 되찾아 붉은 계열을 띠게 되는 것이다. 재미가 있는 구이의 미학이다.


굽다.

불과 연소라는 것은 적잖은 물리화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깨닫는다. 물리적으로 열에너지를 전달하는, 그리고 화학적으로는 산소를 어디에 갖다 붙이는 그런 의미를 지닌 현상이다. 전자에 의해 단백질 와해가 일어나서 아스타잔틴을 해방시켜 빨간색을 띠며, 후자에 의해 미오글로빈의 철이온이 산화되어 갈색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물리와 화학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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